교육이야기

아직도 중요한 한자

lkjfdc 2021. 8. 28. 13:25

 

 

 

 

숙종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면서 비석의 내용을 한자로 기록했고 우리측 실무관리는 (험한 산세도 산세였고 고령의 나이였다고 함)는 직접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글은 당시 주류가 사용하던 글이 아니었고 한글이란 말보다 언문이라 썼고 한국이라는 나라이름이 생기면서 한글이라 칭했다.

높은 사람들이나 학자들은 한문을 주로 썼던 것 같고 중국이나 일본을 갔을 때 사신이 왔을 때 말을 하기 보다 글로서 대화를 했을 것이고 실무자인 중인들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말을 했을 것이다.

동래 어민이었던 안용복이 일본인에게 일본어를 배워 독도와 울릉도 문제를 해결하고 상인 이었던 임상옥은 역관이 되고자 중국어를 배워 청나라에 들어가 인삼을 팔아 거상이 된다.


한자가 중국에서 많이 쓰고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몽골등이 쓰지만 다른 형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쓰면 통하기도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분명한 건 우리의 마음과 의사표현을 할 땐 500여년 역사의 한글이 편리하다.

그러나 띄어쓰기나 가로쓰기 그리고 문장부호등이 쓰여진건 100년이 약간 넘는다.

광해군 때 고위공직자였던 허 균이 한글로 홍길동전을 쓰고 이후 판소리 소설이 정리될 때 한글이 쓰여진 적도 있는데 한문을 한글로 표현한 것도 많았다.


실학이 발달할 당시 용인 출신 학자 유희가 '언문지' 를 썼고 독립신문의 경우 지금과 유사한 문장과 띄어쓰기를 한다.

앞서 말한 백두산 정계비를 한자로 만들면서 한글이나 당시 가능한 외국어로 표기를 하고 서로 확인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한다.

또한 한글이 표현을 하는데 유리하고 정확한 전달을 할 수 있지만 국문학의 역사에서 그리고 대부분 외국을 통해서 전해진 학술용어 그리고 학자들이 사용하는 한자(사대주의 상대주의를 이야기 하고자는 것이 아니다.)는 같이 표기하여 혼란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고 생각한다.

한자가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한글로만 쓰여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 본다.


언제 부터인지 대학교재나 전문서에도 한자가 없다.

한자는 중국만 쓰는 글자가 아니라 우리 민족도 써온 글이다. 어렵고 배우기 힘들지만 계속 써야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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