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있던 방위병제도는 현재 상근예비역이라는 병역제도로 남아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불리었다.)들을 이들의 후예들로 보는데 잘못되었다.
방위병제도는 예비군과 함께 묶어서 다뤄야 하는데 정확한 건 모르지만 예비군이 탄생하면서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만들었다고 본다.
60년대 말 울진삼척의 무장공비 침투가 있기전 청와대를 습격한 특수부대가 있었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 소위는 자신들과 같은 유격전부대가 또 올 것이라고 미군정보계통과 우리군에 이야기를 하며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이야기 하고 한때 북한에 억류된 프에블로호 승무원들과 맞교환을 하려 했으나 김신조의 존재를 북한은 모른다고 발뼘을 했고 결국 묻히게 된다.
당시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공비들이 가장 두려워 한 건 군복과 장비를 갖춘 정규군이 아니라 농촌이나 산간에서 일을 하다가 총을 들고 나타나는 민간인들이었다고 한다.
지역의 예비사단(향토사단)을 중심으로 예비군을 만들면서 면단위의 무기고를 경비할 조직이 생기고 예비군 관리를 해야할 병력 그리고 전투경찰이 주로 하던 해안선 경계( 원래 전투경찰의 업무는 대간첩작전이나 대침투작전인데 정권차원에서 시위진압으로 동원)를 육군에게 맡기면서 부족한 기간병자원을 지역의 입대장정들( 현역판정이나 보충역판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을 소집 향토사단 신병훈련소에 훈련을 단기간(보통 한달) 하게하여 주로 예비군 중대에 배치를 했어야 했지만 현역병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실무부대의 현역병들과 갈등을 낳고 소집된 방위병들의 고난 뿐 아니라 일반부대에서 볼 수 없는 갈등이 현역들에게 배가가 된다.
물론 지역 면사무소나 동사무소에 소집된 방위병들도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 서로 아는 사람들인데 서열이 바뀌고 어제의 친구 선후배가 군대조직에 들어와 순서가 바뀌고 서열이 바뀌고 퇴근후에 폭행이 이뤄지고 소집이 해제된 후(이걸 기분 나쁜 용어로 생각하는데 보충병력이기에 예비군 처럼 소집해제라 썼고 ROTC도 예비군 지휘자나 지휘관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두웠기에 원래 명칭 예비장교훈련단을 명칭을 '학군장교'로 돌렸다고 본다.) 지역 사회에서 안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고 화해도 하지만 지역분위기가 좋을 수 없었고 특정지역에서 군생활을 한 현역병 출신들도 없던 지역 감정이 살아났다.
또한 직업군인들도 방위병제도로 인하여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내에 있는 병들 만큼 출퇴근하는 병력을 단속하고 관리해야 하니 24시간 신경을 썼다.
애초에 현역병 근무기간을 줄이거나 지역 구분 없이 방위병 자원을 줄였어야 하지만 산간이나 시골, 해안선 아니면 수도권의 군부대 밀집지역은 상당수가 방위병으로 소집이 되다 보니 지역분위기 또한 안 좋았다고 본다.
전투부대나 일반기행부대의 방위병들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훈련소과정이 짧고 대기기간이 현역병들에 비해 짧다 보니 한달 훈련 받고 실무에 빨리 배치가 되었고 현역병들은 2달 내지 4달 걸려 실무에 배치되어 오다보니 부조화가 있었고 늦게 온 현역병이 일찍 온 방위병에게 경례를 했다고 얻어맞고 아니 얼굴에 방위병들의 개월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군번이 있어도 당시 현역병들은 방위병들에게 무조껀 말을 놓으라고 선임들이 교육을 했다.
소수인 방위병들은 계급도 경력도 무시되는 현실이 있었고 온갖 잡심부름을 너나 없이 시키고 장교나 부사관들은 알고도 묵인을 했다.
이를 둘러싼 갈등을 병들만의 전통 내지 문화라 모른척 했는데 훗날 이런 것들이 쌓여 인질극이나 총기사고 등으로 비화되어 부대 뿐 아니라 사회를 시끄럽게 했지만 그냥 대충 봉합되었다.
반대로 방위병들이 많은 부대에서는 현역병들이 이들의 사건 사고로 부대가 험악해지고 출퇴근 하던 병력들이 영내대기나 징계를 받으면 후폭풍에 시달렸다. 같이 연대책임을 졌다.
일반 말단부대는 초임하사와 병들간의 갈등, 초임 소위와 병들간의 갈등이 있었고 방위병과 함께 근무하는 곳은 여기에 방위병 현역병의 갈등까지 추가되어 문제가 있었으니 위의 분들은 알고도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다.
군대가 계급이 다가 아니고 공개된 것만 전부가 아니었고 방위병들의 체력이나 학력은 빈부차 극과 극을 달렸다.
국가대표급 선수도 있었고 조폭출신 그리고 석박사 공부하다 온사람, 토호들의 자제들 반대로 불우했던 청년들과 저학력 자등 다양한 자원들을 형평성에 맞게 배치하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위병들은 주로 소총수 주특기(100)를 부여했고 진급간격이 현역병보다 2~3달 느렸고 개인장비도 근무할 때만 착용하고 사용하기에 2인 1개씩지급이 되고 속옷과 양말은 보급이 안되서 구보나 체육대회 때 상의를 탈의하면 통일된 현역병들과 달라서 구분이 되었고 출퇴근병력이기에 장교나 부사관들 처럼 복장이나 두발에 신경을 썼다.
근본적으로 예비군 관련 업무를 함께할 방위병들을 지역 지파출소의 업무에 투입한 것도 문제이고(불법이었을 것) 생활패턴이 다르도 대우가 다른 방위병들을 현역병과 함께 배치하여 갈등을 유발한 정책은 문제가 많았다.
특히 지역의 청년들끼리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와 군대생활을 했음에도 비하를 하고 무시하는 사회적 편견은 국방의 한축을 담당했던 젊은이들의 노고를 너무 몰랐다고 보고 이들이 모습을 재조명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했다.
오래전 이야기라고 희화화 하고 말도 안되는 농담으로 무시해서는 안되며 이들이 있었기에 지역의 예비군 조직은 안정되게 돌아갔고 일선부대도 병력난을 해결했다.
가끔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소개되는 방위병 관련 꽁트나 드라마는 사실이 아니며 병역의무가 현역과 방위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동원예비군부터 민방위까지 또 남아 있다는 걸 인지했으면 한다.
그리고 병역의무를 하찮게 생각하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여성들 그리고 일부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는 '특수'자를 좋아하는 예비입대자들 '장교나 직업군인 지원자'들은 군대가 멋있고 높고 쎈것만 있고 대단한 것만 있는 그런 곳이 아님을 알고 판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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