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의 벌교

lkjfdc 2017. 5. 9. 19:08

 

벌써 15년이 되었을 것이다. 여름 휴가를 받았을 때 간곳이 남도의 여수와 순천 그리고 벌교 옛 읍성이 있던 낙안 그리고 남원 이었다. 물론 하동 구례도 들렸었다.

 

 

부산이나 대구 등지는 친인척이 살고 있어 자주 간편이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인 이곳은 서울을 기준으로 본다면 먼 지역이라 마음먹고 가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지금은 대전을 거쳐 무주 남해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져 있지만 당시엔 약간 불편했다.

 

물론 경북 동해안의 울진이나 봉화 강원도 삼척에 비하며 도달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고 기차도 다니는 곳이기에 마음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시 친구들과 함께 갔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혼자갔던 것 같고 사람들이 붐비는 곳 보다는 조용한 곳을 찾았던 것 같다.

 

특히 '벌교'는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소개가 많이 되었고 '주먹자랑'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어 사람들은 조폭이나 깡패를 연관 짓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큰 관련은 없었고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의 표출로 이어진 갈등이 드러나 생긴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특히 전라남도의 삼성(보성, 장성, 곡성 )과 삼평(창평,나주의 남평, 함평) 은 일본인들과의 관계에서도 강한 결집력을 보이다 보니 이 고을의 이미지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대종교(단군교)의 지도자 '나철'이 보성 사람이었다.

 

일단 벌교읍에서 북쪽으로가면 옛낙안읍성이 나오게 되는데 지금이야 보성에 속해 있는 벌교지만 과거엔 낙안군 관할에 있었다.

 

벌교 아래로는 순천만과 보성만의 일부인 여자만이 있는데 간혹 '여자만 장어구이!'라는 상호의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여자는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갯벌로 유명한 이름이며 벌교아래에 있다.

 

 

특히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는 식도락가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곳이기도 하며 소설'태백산맥'의 주무대이며 이 소설을 쓴 조정래는 근처 선암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시조시인 '조종현'이었다.

 

벌교는 순천에서 이어진 철도가 지나며 아래로는 바다가 위로는 산으로 이어져 예전에는 왜구나 일본의 침략이 있던 접근로 였었고 일제강점기엔 일본인들이 확보하고자 했던 경제적 요지였을 테고 여순반란 사건 이후와 동란 시기엔 좌우대립의 장소였다고 본다.

 

 

15년전(혼자) 그리고 9년전 방문 (아내와)했을 땐 조용한 여름날과 가을이었고 벌교의 상징인 (벌교의 지명유래는 땟목으로 된 다리에서 유래하지만 현재는 없다.) 홍교를 방문했었다. 딱 봐도 오래된 느낌이고 범상치 않았던 것 같다.

 

15년 전에는 읍내의 여관에서 일박을 하고 여비가 부족하던 시절이다 보니 아껴야 했고 푸짐한 식사는 출발 부터 생각이 없었고 빵과 우유로 해결했었지만 벌교 나름의 정서와 분위기를 느끼고 오는데 있어 부족함은 없었다.

 

실제 가다 보면 고생이고 피곤하지만 그 재미로 다니는 것이고 그래야 시간이 지났을 때 더 기억이 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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