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런 단어암기장이 없지만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엔 손바닥에 딱 들어가는 작은 책자가 있었다.
당시엔 영어책이 한종류였고 내가 마지막 갱지로 만든 교과서를 공부한 세대로 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인 1983년에서 ~85년까지가 갱지로 만든 교과서였고 책도 두꺼웠으며 교복도 82년까지 입었었다.
당시 사회과목중 정치경제, 한국지리 그리고 윤리 국사는 공통으로 공부를 했고 과학과목은 1.2개념이 없이 물리면 물리 생물이면 생물로 심화과정이 따로 없었다.
문과였지만 학력고사에서 과학과목 두개는 필수였고 사회과목은 다 공부했었던 것 같고 수학2에 버금가는 국어2라는 과목이 있어 현대문이나 고전 그리고 한문등을 스트레스 받으며 했는데 중학교 때 꿈을 심어 주던 그런 국어가 아니었고 훈민정음 부터 두시언해 가사문학의 작품들을 이잡듯이 했는데... 이건 대선배들에 비하면 장난이었다.
60년대 중후반에 고등학교를 나온 대선배분은 이과였지만 고전문화의 지문을 명쾌하게 암송하고 영어의 경우는 단어를 외우기 위해 사전을 한장씩 찢어 먹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태워서 먹는 위험한 짓? 을 행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인지 글쓰는 것 부터 공부에 대한 기본 태도가 '도'를 연마하는 사람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난 공부보단 매점을 가는 재미와 컵라면 먹는 재미 그리고 도시락 두개 까먹는 재미로 다녔던 것 같다.
이것이 없었다면 8절지 가득 하루 한장씩 중학교 때 부터 가득채워 깜지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름) 를 써서 재출하고 이것을 못하면 매질을 당하고 막상 이 순간을 통과해도 단어시험이나 질문에 답을 못하면 손바닦이나 다리에 멍이 성할 날이 없었다.
수학시간은 수학시간 대로 칠판에 나와 못풀면 얻어맞고 그나마 국어시간은 맞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가자 마자 많은 학습량에 적응을 못해 공포의 시간이었고 특히 고전시간엔 영수시간 처럼 맞는 건 다반사 ...
시험 끝나면 다른 과목도 마찮가지 ... 틀린 갯수로 맞고 평균 깍아먹었다고 맞고 중요한 것 틀렸다고 맞고 모의고사 때는 전국 등수가 나오고 옆 학교 특히 여학교 학생들 보다 평균이 낮으면 그 또한 감당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니까 웃지 다시 돌아 가라면 ... 글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이다.
졸업하고 이젠 끝이구나 했더니 20대 언저리 입대를 하고 중. 고등학교의 재판을 경험하고 연배가 높은 선생님이 아닌 또래의 선임에게 임무숙달을 못해 뺨을 맞고 단체로 벌을 받으며 그때의 입장은 또 달랐다. 이건 혼자만 피해를 보는게 아니고 단체가 힘들어지고 대형사고가 도사리고 있어 학생 때완 또 달랐다.
요즘 1988하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복고 프로가 유행이다. 그런데 지난 이야기다 보니 긍정적이고 뭔가 애뜻하다.
지난 시절은 좋은 것만 남는 건지 아니면 현재가 힘드니 더 부각되는 측면도 있지만 결코 아름답거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힘들었을 것이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 같이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들 다스리기도 애가 타셨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난 공부 못하면서 먹는 재미, 노는 재미, 차타는 재미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들을 이해한다. 단 친구를 괴롭히고 돈 뺐고 시험볼 때 부정행위하며 자신의 실력을 부풀리고 속여가며 남을 무시하는 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잘하고 시험도 잘보고 칭찬을 받는 것도 좋지만 다른 것에도 재미를 느끼고 즐기는 생활도 교육의 한면이라 보며 이것이 사회를 더 밝게 하고 활기차게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