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야기

처인성에 다시 가다.

lkjfdc 2019. 6. 3. 09:23

 

 

 

 

 

 

 

5년만이었다.

 

일이 있어 오산엘 가는 길 중간에 완장리라는 곳까지 버스를 탔고 그 앞에 있는 제방같이 생긴 곳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사이 동네엔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인근엔 드라마 '스카이 케슬'에 나왔던 전원주택가가 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상전벽해 농촌의 들판 한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 지고 길을 내느라 여전히 건설장비들은 이동을 하고 있고 복잡하다.

 

용인에 살지만 사람들은 처인부곡의 옛터가 어디인지 잘 모르며 '성'이 라고 하면 한양도성이나 수원도성, 혹은 낙안읍성 그리고 유명한 남한산성을 생각하는데 몽촌토성같이 제방처럼 흙으로 된 성이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데 처인성이 바로 토성으로 용인의 상징과도 같다.

 

만약 음식점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남대문같은 성문을 만들고 '처인성'하면 안될 것이며 성에 대한 고정 관념에 의한 이미지일 것이다.

 

 

직접 가보면 들판 위에 솟은 둑처럼 생겼고 나무들이 있고 1000년전에 이런 나무가 있었는지 모르나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수풀을 조성했을 것이라 추측하며 이 성을 지나면 남쪽에 작은 마을과 분기점이 있고 아래로 가면 안성 서쪽으로 가면 오산 그리고 동쪽으로 향하면 용인의 이동읍으로 향한다.

 

 

처인부곡에서 부곡은 과거 고려 때 까지 있던 농업을 하는 집단으로 평민이지만 차별을 받던 곳으로 당시 몽골이 침략하자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이 싸움을 이끈 사람은 승려였던 '김윤후'로 몽골의 선봉장이었던 '살리타이'를 한발의 화살로 명중시켜 전세를 뒤집고 처인부곡을 지켜냈다.

 

 

고대로 가면 왕이 전쟁의 전면에 나서고 이런 경우 나라는 탄탄했고 백성들도 하나가 되어 이겨냈으나 언제 부터인지 전란이 나면 지도층이란 ? 자들은 숨고 도망가기 바빴고 그 때 부터 우리의 국력과 조직력은 약해졌고 느슨해 졌던 것 같다.

 

 

용구현의 '용'자와 처인부곡의 '인'자를 따서 '용인'이라 불리었고 보통 용인하면 김량장이라고 부르던 곳을 이야기 하지만 이름의 시작은 남사면의 처인부곡이 지명의 어원이다.

 

 

때에 따라서는 지휘자의 판단이나 전투에 임하는 사람의 순간적 판단이 전세를 뒤바꿀 수 있고 역사를 뒤바꿀 수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예는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역사에도 종종 있다.

 

더 중요한 건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을 잘하는 것이 정치이며 외교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