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의열단과 김상옥 열사

lkjfdc 2018. 12. 10. 09:22

 

 

 

 

 

 

 

의열단은 밀양출신 김원봉과 윤세주가 중국에서 만든 독립운동 단체이다.

 

신채호선생의 조선혁명론에 영향을 받은 이 단체는 기존의 애국계몽운동이나 국채보상운동 같은 경제적 자립이 아닌 식민통치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요인을 암살하는등 일본의 무력지배에 무력으로 대응하며 침체된 당시의 독립운동에 자극을 주기 위한 방안으로 결성되었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우리 독립의 열망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국내에 알렸고 친일인사들을 떨게 했다.

 

 

그중 여러분이 있었으나 그들의 선배격인 대표적 인물 김상옥 의사의 역정은 특별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의사는 일찍 부친(구한말 군관)을 여의고 보통학교2년을 다닌 후 기능공으로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청소년기 야학을 다니고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갖기도 했으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친구들과 야학을 설립하여 불우한 이들과 배움을 함께하였다.

 

 

1907년 나라빚을 갚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하자 어려운 상황에도 성금을 납부하고 23세때 철물점을 경영하였고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는 물산장려운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913년엔 대한광복단에 참여하고 1916년 전남 보성의 헌병분견대를 기습 전투를 벌이고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였다.

 

1919년 3. 1 운동 직후엔 지하운동 조직인 '혁신단'을 조직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는 지하신문을 발행하였다.

 

1920년엔 미국위원단 방한에 즈음 일본고관과 친일반역자. 고등계 형사를 암살하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였으나 발각되어 상해로 망명 여러명의 독립운동가를 만난다.

 

 

그 후 국내로 잠입 군자금을 모와 전달하고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에게 경각심을 주고 서울 중심지에서 1000여명과 총격전을 하여 일경 수명(16여명)을 살상케 한 후 의사는 자신의 총으로 자결을 한다.

 

 

한때의 우발적 행동이 아닌 어릴적 부터 쌓아온 배움과 결심으로 실천하였으며 일본의 악날한 식민지배에 대응하여 핵심부를 타격하고 서울에서 벌어진 전무후무한 총격전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한 의사의 업적은 의열투쟁의 본보기임에 분명하다.

 

이분의 동상이 대학로 옛 서울대학교 자리 현재 마로니에 공원에 있다.

 

군인의 아들이었던 김상옥열사는 어떤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바쳐 독립운동 뿐 아니라 교육과 함께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고자 애 쓴 의인이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보다 더 대단했던 총격전이 일본인들과 그 주구들이 떵떵거리고 살던 한복판에서 발생했고 열사는 끝까지 당당했다.

 

열사는 우리나라가 다시는 남의 나라에 지배당하지 않고 영원하길 빌면서 생을 스스로 마무리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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