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해병에 대한 기억

lkjfdc 2018. 11. 15. 16:46

 

 

 

 

그림 중에 진돗개가 상징인 해병대 로고가 있다.

 

갑자기 뜬금 없이 왜 해병대 일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육군의 상징은 호랑이 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과거엔 일년에 육군 훈련소로 십 만여명... 기타 사단의 신교대로 십만여명 정도가 입대를 했다.

 

육군이 이십만의 병력을 다양한 훈련소에서 신병을 배출했다면 해병대는 포항의 훈련단에서만 배출되며 육군의 약 1/20밖에 안된다.

 

여기에서 양성되는 건 소총수 즉 전투병으로 기본적으로 육군의 신교대나 훈련소 과정과 유사하나 상륙전에 관한 것이 추가되며 대체로 육군보다 교육기간이 짧았다.

 

과거 우연한 기회에 포병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온 해병대 이등병들과 특기병 교육을 받았었다.

 

이들은 초기에 오면 육군 이등병들과 잘 지내자!라는 것을 파견나온 장교나 간부에게 교육받지만 선배깃수들은 절대 이들을 편하게 놓아 주지 않았다.

 

웃으며 들어온 육군의 교육기관이 실무(해병들은 당시 자대를 이렇게 이야기 함) 뺨치는 살벌함으로 밤을 보내고 웃음을 잃고 눈에는 핏발이 섰었다.

 

이들의 교육은 뭐가 다른가 알기 위해 밤에 근무를 설 때 대화도 해보고 의무실에 같이 입실했던 당시 600자 초기였던 특기병 동기와 친했는데 그들의 훈련소 생활은 육군보다 대기병 생활이 짧았던 것 같고 부대 이동간 소요되는 시간도 짧았다.

 

가장 중요했던 건 육군도 정신교육을 하지만 해병의 경우 초기 해병의 덕산 비행장 시기 창설 부터 동란시기 군산 장항 전투를 시작으로 인제 양구 도솔산 전투 그리고 베트남의 투이호아 전투와 짜빈동 전투까지 그들의 승전과 자부심을 길지 않은 시간에 철저히 교육하고 '미제 철조망은 녹쓸어도 해병대 깃수빨은 녹슬지 않음'을 강조했다.

 

같은달 입대를 해도 깃수가 다르면 위 아래를 강조하던 그들은 육군보다 입대일을 느렸지만 늦게 와서 일찍 배출되었었다.

 

육군도 정신교육을 했었지만 대기기간이 길었고 그 시간을 환경정리와 작업으로 보내고 모자른 기간병을 도와 학교나 부대에 요소 요소 투입되 사역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기기간과 이동간의 시간을 작업으로 공포감 내지 기대감으로 보내기 보다는 해병대 신병교육에서 강조 했던 정신교육과 역사관 교육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전통있는 맹호부대(수도 기계화 보병사단)도 대기기간 중에 정신교육이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작업장으로 불리어 다닌다.

 

 

신병과 대기병을 사역병으로 동원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자부심을 부여하고 부대역사교육이나 현황교육을 미리 하는 상급부대와 군지휘관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지금도 '악'하는 소리와 함께 팔각모에 대한 것과 역사를 암송하던 그들과 비장한 눈빛으로 군가를 부르던 600자 해병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겐 훈련도 오락도 해병다운 뭔가가 있었고 특기병 교육말년에는 말년병장 뺨치는 여유가 있었다.

 

작지만 강한 군대 '해병대' 지금은 경쟁율이 더 치열해지고 많이 순화되었지만 그 전통이 어디 하루 아침에 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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