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이곳의 생활은 아침 점심 저녁의 시점이 가장 바쁘고 정신이 없다.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이 더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데 가정에서 무연고 장애인이나 위탁받은 장애인을 돌보는 곳에는 4명당 1명의 사회복지사가 있어야 하며 보통 교대로 근무를 한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한번 출근했을 때 3~4일은 이곳 숙소에서 수용된 장애인들과 먹고 자고(개인 숙소는 있지만 밤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함께 생활을 하고 돌봐 주어야 한다.
마치 전방 GOP의 영외거주 간부들 처럼 지내는 것 같다.
가급적이면 읍내나 가게에 갈일이 없고 집에 갈 때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가서 배식을 하는데 장애등급과 영양상태 그리고 숟가락 포크 젓가락을 다르게 놓고 밥의 양이나 반찬의 양도 조절을 해주고 밥을 먹은 후 칫솔질을 못하는 경우 일일이 칫솔질을 하며 대부분 약을 먹는 경우가 많아 아침과 저녁엔 약을 주어야 한다.
약의 종류는 정신과 관련이나 정형외과 내과에서 처방을 받은 약을 그때 그때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 목욕을 시켜야 하는데 당담선생님이 급한일이 있거나 휴가중일 때는 목욕을 시키는 인원이 두배가 되고 양치시키는 인원도 2배가 된다.
반대로 내가 쉬면 다른 분이 나의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과시간에 빨래를 돌려서 말리고 분배를 해준다.
시설의 환경정리나 큰 관리는 가끔씩 찾아오는 교회신도들이 해주고 짜장면봉사나 공예선교단, 이발봉사, 목욕봉사를 하는 이들이 찾아와 도움을 준다.
얼마 안 되었지만 학원을 하면서 종일 관리자로 신경쓰고 수강료 징수(이 일이 많이 힘들었다.)하고 밤늦게 집에가고 일찍 출근하며 가정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내에게 미안했었다.
개원 당시 개업식을 하지 않아서 일가 친인척들의 찬조금을 받지 않았기에 이후 빚은 지지 않았지만 아내와 동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고 내가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폐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을 했었고 막상 폐업을 하니 여러 비용이 들었고 왜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못닫는지 이해가 된다.
지금은 무얼 다시 차리고 사장소리 듣고 원장소리 듣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월급받는 직원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팀장이니 실장이니 수석 뭐니 하면서 조직의 실세로 직원들 명줄을 쥐고 흔드는 관리자는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일을 못하다. 잘 한다는 각자 살아온 경험에 따라 기준이 다르고 일터마다 다른 것 같다.
도움은 하나도 안 주고 뒤에서 수근대는 분위기가 싫고 편을 나누어 친한척 하는 것도 그렇다.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지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