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연극 '반민특위'를 보았다.
비오는 오후 대학로 근처엔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고 마로니에 공원 바로 옆의 극장에 들어 가니 그곳에도 비를 피하기 위해 집회인파들이 모여 있고 연극을 보기 위한 관객들도 모여 있었다.
내용은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고 48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조직된 반민특위에 관한 것으로 TV나 영화로 한번씩은 봤던 내용이다.
보통 우리가 드라마나 연극에서 본 친일파는 개성이 드러나고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며 많이 배우고 똑똑하며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신용도도 높으며 우리사회를 이끌었던 사람이며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며 대단한 사람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이 연극에서는 신문사 기자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형식과 함께 당시의 신문기사나 사진을 슬라이드식으로 보여주고 법정에서 자신을 변명하는 친일파들이 나온다.
당시 정부의 친일파 척결이 왜 실패 할 수 없었는가를 보여주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와 함께 정치적 욕심이 낳은 결과를 보여주며 백색테러리스트가 양심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친일척결보다는 경찰에 의해 조작된다.
관제시위로 인해 반민특위가 공산주의자로 매도되고 잡혀가서 고통을 당하며 극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더 이상한 것은 친일파들이 반공을 기치로 선봉에 선 애국자로 둔갑하며 그들은 또 선택받고 자기 반성은 커녕 더 떵떵 거리는 세상이 된다.
연극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자는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술을 권하는 아픈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못마땅하고 만삭이 된 아내와 현실을 이야기를 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연극을 보면서 당시 정부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언론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까지 살아 남은 주요 언론은 어떻게 했나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독일의 침략을 받았던 프랑스가 독일에 협력한 지식인들과 언론인 그리고 나치부역자들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앙갚음을 하고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임에도 용서를 비는 일은 없었고 피해를 본 사람이 오히려 참고 고통으로 일관한 역사는 미래 또한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일 수 없다고 본다.
금품과 눈에 보이는 시늉보다는 진정성을 친일파들과 일본에게 바라는 바임에도 해방이후에 이러한 일은 이루워 지지 않았다
과거에 의해 현재와 미래가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반성은 없었으며 침묵을 강요했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끝낸 친일청산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