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서산 운산면 마애삼존상

lkjfdc 2022. 5. 2. 09:01



























서산하면 바다가 생각하고 갯마을이 생각나지만 요즘엔 공업단지가 생각나고 서해안의 거점으로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태안과 한 때는 같은 자치단체 였고 동쪽으로 당진이 있고 남동쪽엔 예산 남서쪽엔 홍성이 있고 옛어른들은 '스산'이라 발음을 했던 경우가 있다.

서산의 상징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산 마애삼존불'이 아닐까? 싶다.

이 마애불이란 건 절에 모셔진 일반 불상과는 달리 바위에 새긴 부조로 보통 세월이 지나 많이 마모되고 흐려져 탁본을 떠야 그 실체가 나타나는데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은 사진으로만 봐도 확 드러나고 특히 '웃고 있는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라 '백제의 미소'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확 드러남에도 그 발견은 우연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보통 서해안의 낮은 지역은 산이 낮고 들이 넓어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보기 어려운데 마애불이 있는 곳엔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많지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그 존재를 몰랐던 것 같다.

만약 그 존재가 일찍 알려졌었다면 지금까지 잘 보존되지 않고 많이 깎이거나 훼손되어 그 모습이 왜곡되지 않았을까 싶다.


만들어진 시기가 삼국시대(정확히는 가야가 있었으니 사국시대라고 해도 될 듯)로 중국과의 해상교통이 좋았던 서산 태안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마애불 제작이 있었던 것 같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그 문화가 비단길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일본을 거쳐 전해지는데 특히 선사시대 부터 우리 고유의 종교가 민간에 남아있던 시기 체계화된 외래종교 불교는 바로 정착되지 않았고 신라에서는 이차돈의 순교도 있었다.

왕이 중심이 되어 수용을 하고 공인을 하며 큰 규모로 성장을 하며 이에 따라 다양한 절과 그 안에 모셔진 불상 그리고 탑들이 만들어 지는데 보통 불상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을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이 제작된 곳과 모셔진 곳이 다를 수 있지만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하며 그 지역의 형편에 따라 그곳을 잘아는 사람들이 준비를 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삼존불의 경우 보통 가운데 모셔진 분이 크고 주변의 둘은 가운데를 부각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서산의 삼존불은 가운데 있는 분은 웃고 있고 왼편은 생각에 잠겨있고 오른편은 뭔가 손을 부여잡고 있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 발견의 사연을 들으면 어떤 종교적인 부분보다 우리나라 어른들의 정서가 느껴진다.

가운데는 남편이고 옆의 둘은 부부라는 상상도 재밋고 이 이야기가 한 학자에게 알려져 발견이 되고 세상에 알려졌다.

노천에 있기에 인공적인 조명보다 자연 그대로의 햇빛과 어둠에 의해 그 느낌이 다르다.


찾아가는 곳 짧은 산 계단을 오르면 바람도 좋고 산 아래 모습도 좋다.

지나다 또 들려보고 싶은 곳이며 이름처럼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곳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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