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연풍면은 조령 부근 영남으로 넘어가는 입구에 있는 곳으로 과거 수령(군수와 현령)이 있었으며 독립된 고을이었다.
주변 산세가 수려하고 교통도 좋아 지나가다 들리는 사람들도 많다.
괴산군이지만 교통로 때문에 괴산읍이나 금강수계쪽인 청안이나 증평의 주민들과의 왕래보다 충주나 고개 넘어 문경과의 왕래가 많았고 군사적인 측면도 강하여 과거 특전사나 2군 사령부 예하 부대들의 작전지역으로 또한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다.
동란시기 6사단 청성부대는 이화령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벌이면서 질서 있게 철수를 했고 김일성은 인근 수안보까지 내려와 지휘부에게 지시하여 독려했다.
과거 단원 김홍도가 고을 사또로 있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으며 동네엔 김홍도의 호를 딴 단원길이 있고 씨름도에서 착안한 씨름연습장도 있다.
독립된 고을답게 공립학교인 향교가 있고 다른 지역의 경우 문을 닫아 외부인을 통제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문이 열려있어 안까지 들어가 살펴볼 수 있었다.
위의 대성전 그리고 명륜당이 아래에 있고 더 아래 부속 건물들이 차례로 있고 동네를 약간 내려 볼 수 있다.
연풍초등학교엔 관아가 있고 바로 근처에는 천주교 박해가 있던 연풍성지가 있다.
영남과 기호지방을 오가는 고개밑에 있어 산간지역의 느낌이 강한 측면도 있지만 길가 영업을 중단한 버스터미널을 보면서 보통 지나치는 면소재지의 정류장이 아닌 버스가 긴시간 정차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35여년전만 해도 이곳은 비포장도로인 괴산 연풍간 도로와 서울 부터 활발하게 이어진 도로를 연계한 지점에 세워진 교통의 중요지점이었다.
대구에서 상주에서 이화령을 힘들게 넘어온 직행버스나 서울에서 내려온 직행버스가 만나고 청주에서 온 직행버스 충주에서 온 완행버스 그리고 괴산에서 들어오는 군내버스 또는 새마을 버스라고 불리다 시내도 아닌데 시내버스라고 불리던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터미널에 정차하고 안의 대합실엔 지역주민들 뿐 아니라 먼지역의 주민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던 대기공간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지금은 쓸쓸한 당시의 흔적만 남아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터널이 뚫리고 주변 지역이 더 부각되면서 쇠락한 측면이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느낄거리가 있는 괴산 연풍면은 큰 길로만 다니는 이들이 잠깐 호흡을 멈추고 다가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