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박사는 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분이다.
방송에 나와서 자녀의 교육문제나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며 시청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시형 박사에겐 위로 형이 한분 계시는데 이분의 이름은 이돈형님으로 이분이 6.25동란 당시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육군 신병이 되어 포병부대에 배치 되어 전선에서 주로 중국군과 격전을 하며 전선이 고착화 된 시기 포병간부후보생으로 교육을 받고 임관하여 육군의 포병증강시기 광주지역에서 부대를 편성하여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화력전을 전개하고 휴전 이후 초등군사반을 수료 했다.
지금은 임관 후 실시하는 초등군사반(OBC)을 당시엔 장교로 임관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미국으로 가서 교육을 받는 초급장교나 고급장교도 있었는데 박정희도 당시 미국의 포병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으며 당시 형성된 인맥은 훗날 그의 또 다른 인맥이 된다.
아무튼 당시 중학교(지금의 중고교가 통합된 과정으로 6년제)와 대학을 다니던 청년들은 군에 남아 장교가 되어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는데 이돈형님의 경우 광주 포병학교에서 포술학교관을 하면서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학군단 (ROTC)창설 요원의 역할을 하며 제대 후 전자계산기(Computer)관련 업무를 배우러 일본으로 갔다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여 취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힙쓸려 생과 사의 문턱을 넘고 군에 남아 다양한 경험을 하고 10여년 넘게 있다 제대를 했지만 취업문제로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살다 은퇴를 했으며 참전유공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수많은 청년들이 학업을 멈추고 군대를 갔다.
성인이 되기전인 경우도 있었고 막 성인이 된 경우도 있었으며 일본 교포들도 참전을 했으며 이후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이땅에 외롭게 묻힌 경우도 많았다.
당시 군인이 된 이들은 자신의 젊음을 걸었고 군은 대한민국의 다른 조직보다 발전된 모습이 있었지만 이들의 장래문제나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으며 61년 5.16쿠테타의 원인 중에는 군과 민간사회의 차이 그리고 그외 따른 불만요소 또한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는데 있어 정치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동란시기 전선에서 희생된 청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며 이돈형님의 희생은 그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복의 해외유출 (0) | 2021.08.20 |
---|---|
육군의 상징 호국이 (0) | 2021.08.09 |
현충일 남과 북 (0) | 2021.06.06 |
군대의 범죄 (0) | 2021.06.05 |
군대 부실급식 논란 (0) | 2021.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