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박사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고등교육을 마치고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나 해방된 우리나라에 건너와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사회를 살리기 위해 신명을 바친 인물이다.
우리는 '씨없는 수박'으로 기억을 하지만 실제 우박사의 업적은 아닌 것으로 안다.
우박사가 우리나라에 왔던 당시 전란이 있었고 군복무 기록에 예비역 해군 소령인가로 되어 있으며 정훈병과로 복무했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말을 못하는 우박사가 군생활을 했을까는 의문이며 전시상황이라 부여한 직위가 아닐까 판단한다.
그러나 훌륭한 업적 뒤에는 역적의 아들이라는 굴레가 있었다.
다름아닌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방조한 별기군 훈련대 대장 '우범선'이 그의 아버지였고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인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우장춘이었다.
우범선은 암살되었고 우장춘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일본에서 농학박사가 되었고 (이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동경제국대학의 정규학사를 마친 것이 아니었으며 청강생으로 공부를 했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박사학위를 받는 건 당시에 무척 어려운 과정이었다. )육종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다.
중요한 건 일본에 있었다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고 가족과 편안한 생을 살 수 있었음에도 가족과 생이별하여 조국에 들어와 자신의 열정을 살려 농업분야에 기반을 다지고 식량증산 및 우리 땅에 맞는 배추나 무우 강원도 감자 같은 것을 개발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에 감귤재배기술을 보급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우박사를 대한민국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많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우박사는 어려웠던 대한민국에 와서 온갖 고생을 하며 열악한 농업분야의 기반을 만든다.
당시 일본에 의존하던 종자를 우리나라에 맞게 보급하였고 말년까지 연구에 매진하다 병으로 고인이 되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을 때라 그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고 그의 실천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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