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잘못된 사실

lkjfdc 2020. 8. 27. 09:58

 

 

전쟁영화를 보면 국군장교들은 표준말을 쓰고 특히 고급장교들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
중대장은 당연히 대위인 경우가 많고 대대장은 중령 연대장은 대령이라고 생각하며 사단장은 소장이나 최소한 준장이라 생각을 하며 영화를 감상한다.
당연히 인식표는 목에 걸고 있고 총은 M1이나 칼빈이라는 제식소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했을 거란 생각도 한다.
그리고 대위는 무조건 중위나 소위에게 반말로 명령을 하며 소령 중령 또한 당연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당시엔 지금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규율이나 체제가 만들어 지지 않았던 것 같다.
휴전 이후 1961년 5.16이 일어난 배경에는 이런 복잡 다양한 군의 상황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군사영어학교 그리고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또한 늦게 창설되는 공군등 군대를 지원한 이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꿈도 있었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절실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다른 직업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후에 여러 이유로 군에 들어온 이들도 있었고 북에서 발생한 토지와 재산몰수 종교탄압 그리고 신의주 의거같은 여러 문제가 얽혀 군대에 들어온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남한에서는 북의 군대창설을 바라보며 북으로 간 이들도 있었다.
여러 사설 군사단체가 난립했고 이들중 군사영어학교에 들어올 시기를 놓쳤거나 사관학교에 들어온 늦게 이들 중 군사경력을 크게 인정 받지 못한 이들은 먼저 임관한 이들에 비해 계급이 낮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였다.
당시 만군과 일본군 출신들은 군에서 각지역에 창설된 연대의 지휘관이 되고 바로 벼락출세를 하지만 박정희는 생도신분으로 형 박상희의 사망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일본군 장교일 때도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국군이 되서는 경력을 인정받지 않고 사관학교에 입교 단기교육을 받고 소위가 된다.
당시 고급장교인 정일권, 백선엽, 김백일등과는 만군동문이었으며 이들이 선배이긴 했지만 박정희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박정희는 3.8도선을 경비하거나 육사교관등에 있었고 그마져도 여순병란시기 군복을 벗게 되면서 군무원 비슷한 신분이 된다.
김재규 또한 박정희와 사관학교 동기지만 군경간 체육대회 사고로 옷을 벗고 교사를 한다.
당연히 복직을 했을 때 계급이 낮았다.
당시 일부를 제외하면 고급장교의 나이는 30대 전후 젊었고 전쟁 바로직전 그리고 전쟁 중 오히려 징집되는 병력들의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었다.
군대가 계급으로 가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사회의 현실은 나이와 깃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이북에서 온 장교들이 많았고 병력들 중 북한에서 중등교육이상을 받고 온 이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남한에 경제적 기반이 없다보니 군에 들어 온다.
특히 포병같이 교육기간을 요하는 병과엔 서북청년단출신들이 많았다.
문제는 동란직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고 다시 전쟁이 터져 군대에 들어온 젊은이들이 생기는데 요즘이면 나름 예비역대접이나 융통성이 있었겠지만 하급제대는 족보가 꼬이고 서열에 있어 문제가 생긴다.
같이 군생활 한 사람은 경력이 차고 현지 임관을 하거나 아니면 사관학교교육을 짧게 마치고 장교인데 전쟁이 터져 다시 입대한 이는 명령을 따르는 쫄병이 되거나 장교로 재입대 해도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되니 그 체계는 문제가 많았다.
소대장이라는 보직을 하사관이 수행하기도 했고 중대장이 전사하자 임관한지 몇 주 안된 소위가 대신하고 임관도 현지에서 한 경우 명령서는 내려갔겠지만 계급장을 달지 않았고 군복 또한 후퇴와 공격을 자주하다 보니 적군의 군복을 편한대로 입고 군화도 필요하면 죽은자의 것을 벗겨 신고 반대로 적에게 신발이나 옷가지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후퇴할 때는 계급장부터 군번 군화까지 신분을 나타내는 건 다 없애고 그러다 포로가 되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반대로 국군에게 잡히면 드러내는데 문제는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을 하면 이중 간첩일 수 있기에 몇차례 심층면접과 조사를 하고 교차검증이나 지인을 만나 군적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아있는 군사 자료중 특히 최일선에 섰던 위관계급장이나 보병휘장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일부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복제한 것이며 휴전후 시간이 흘러 시장이나 고물상에서 흘러나온 유품들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모아지고 이것이 우리나라로 다시 들어 온다고 한다.
영화처럼 멋진 모습의 국군장교는 존재하기 어려웠고 죽은자들 옆에서 태연하게 밥을 먹고 부족한 장비를 챙기고 험한 산야를 다니다 길을 잃고 길에서 만나는 젊은이를 국군인지 북한군인지 분간하지 못했고 의용군으로 잡혀온 어린 이남 출신 포로들을 상부에 알리기도 힘들어 무기만 빼앗아 강에다 버리고 고향으로 돌려 보낸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쟁이 이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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