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발안의 오래된 가게 '학우당'

lkjfdc 2020. 6. 11. 09:13






화성시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도시이며 경기 남부에서 가장 넓은 기초자치단체라고 본다.
원래는 수원과 같은 지역으로 묶여 있었으나 분리되었으며 예전 사람들은 수원이라는 정체성이 강했으나 현재는 정체성이 달라졌다고 본다.
화성은 신도시 부터 광활한 농촌 그리고 배타고 고기 잡는 어촌 공장이 모여있는 공단지역까지 다양하며 철도 부터 고속전철 , 수도권 전철 , 고속도로까지 확보되면서 주민들의 이동도 활발하다.
특히 이 지역중 신도시 농촌 공장지대 그리고 어촌의 영향을 다 겸비한 곳이 향남읍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향남보다 '발안'이란 명칭을 지역의 이름으로 아는데 듣기로는 '뻘안'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과거 바닷물이 강으로 올라오기도 했고 참게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하며 발안의 아랫쪽 요당리나 윗쪽의 비봉면 청요리 같은 지역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는 걸 보면 바다와 관련이 많은 지역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교통의 요지이고 예전에도 장이 서고 일찍 일본인들도 들어왔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시기 발안에서는 만세운동이 일어나며 인근 제암리에서는 일본이 주민들을 교회당에 집어넣고 태워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도 3월이면 제암리의 경우 기일이 같은 집이 여럿이라고 한다.
세월이 가도 그 상처는 지역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체육시설이 세워져 큰 축구경기도 이뤄져 인근 수원이나 아래인 평택 아산에서도 구경을 온다.
그리고 바로 아래는 평택 해군기지가 있고 옆에는 해병대사령부가 있으며 수원과는 공군비행장을 놓고 서로 반대하는데 화성의 대표적 공간인 이곳에서도 말이 많을 것이지만 쉽지 않다 .
아무튼 발안에는 오래전 부터 장이 섰는데 그 장터의 중심쯤에 70여년 가까이 책을 팔고 문구를 파는 곳이 있다.
여느 시골장터처럼 식당과 술집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전문상점등이 들어찬 곳에 새로운 가게같은 모습의 문구점이 있다.
이 문구점의 이름은 '학우당'이며 6.25동란이 끝날때 쯤 생겼다고 한다.
문구점과 서점을 선친때 부터 했고 지금은 아들 운영하며 건물주이기도 한데 건물의 3층은 지역도서관으로 개방하여 시장상인들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건물이 위치한 장터는 바로 밑 향남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비해 좁고 낙후되고 문화시설이 부족한데 문구점을 하는 분은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제공 신도시와의 차이를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보통 지역에 돈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식당이나 술집 또는 게임장, 여관이나 호텔이 생기는데 그 한가운데 요즘은 사라져가는 서점과 문구점을 하면서 또한 지역민에게 자신의 건물을 제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동안 지역에 살아온 주민들에겐 계속 있어주어 추억의 장소가 되고 새로 이사온 사람들에겐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향남이라는 지명보다 발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계속 변화하는 가운데 오래된 가게인 '학우당'이 계속 남아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