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168

밴드 부활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대중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근간은 밴드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수만이 주목을 받는 현실에서 연주자와 가수가 하나가 되어 합주하는 밴드음악의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자 없는 가수는 모래성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 생각하며 방송에서도 만들어 놓은 반주테입이나 입만 벙긋하는 공연은 방송전반의 기술이나 음향효과를 담당하는 분들의 입지도 약화시키는 퇴보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20대 나이 생각나는 것은 비교적 당시에 알려진 밴드 부활은 서울이라는 중앙무대에서도 이승철씨를 전면에 내세워 소녀팬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인기절정의 밴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음반의 사진엔 김태원이라는 기타리스트가 등장했고 이들은 유명세와는 달리 무대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음반이야기 2017.12.20

신중현 헌정음반

트리뷰트 앨범이라는 것이 있다.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후배들이 헌정하는 음반이다. 보통 학계에서 퇴직한 은사를 위해 논문집을 펴내거나 예술계에서 음악회나 전시회를 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후배들이 음반을 내는 경우는 쉽지 않다. 과거 고 김정호나 고 김현식 등 고인이 된 가수를 추모하는 형식으로 나온 경우는 있지만 은퇴전에 음반을 내고 헌정한 건 신중현님이 처음일 것이다. 또한 솔로가수가 아닌 밴드들이 중심이 되어 합주를 하고 음반을 내기란 우리나라 같이 척박한 현실에서는 더 힘들다. 방송의 일방적이고 규제일변도 그리고 밴드음악을 연주하여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이해시키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80년대에서 90년대 까지도 생음악 위주인..

음반이야기 2017.10.07

종이로 된 음반차트

지금은 이런 음반차트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겠지만 25년전에는 이런 인쇄물이 배포되어 음반점에서 구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종이로 된 악보를 사기도 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손수 듣고 코드를 적어 곡을 연주했다. 당시에도 정품음반은 비싸다 보니 공테이프를 구해 녹음을 하거나 길보드차트라고 해서 복제된 음반을 구해서 들었다. 아니면 집에 있는 더블테크 카세트를 이용해 복사를 했었지만 원하는 음질이 나오지 않았다. 정품의 경우 드럼의 미세한 심벌이나 발베이스 소리 녹음한 가수의 숨소리까지 알 수 있고 다음으로 가사지까지 들어 있었는데 서울음반이 이런 음반을 잘 만들었고 품질도 좋았었다. 찾아도 없는 노래는 방송국에 신청을 하는데 중앙방송 보다는 지방방송이 신청한 노래를 잘 틀어주고 사은품을 주는 경우도 있었..

음반이야기 2017.09.13

DVD의 쇠퇴

DVD는 비디오 테입 보다 화질이 깨끗하고 보관이 용이하여 20여년 전 부터 실용화되고 대여점도 생기고 작은 전용상영관도 있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상영되면 과거 비디오테입이 나오듯 출시되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든가 미공개 화면등도 소개되고 기타 자료나 볼거리 사은품도 주기에 고가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듯 이 대여점들 또한 문을 닫고 있으며 이들과 영업하는 책대여점도 문을 닫고 있다. 잘은 모르나 유선방송이 발달하고 다양한 채널이 편성되어 대여비 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시청할 수 있고 인터넷에도 지나간 영화를 볼 수 있는 사이트나 동영상체제가 많다 보니 DVD는 그 가치가 떨어진 것 같다. LP판이 퇴조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작하지 않아 공장이 문을 닫고 카세트 테입..

음반이야기 2017.09.05

가수 조동진

가수 조동진님이 돌아가셨다. 70년대 후반 그는 늦게 앨범을 발표했지만 활동은 빨랐다. 조동진 사단이라는 이름에 맞게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의 친동생 또한 베이스 기타 연주자로 유명한 조동익이다. 원래 포크가 이땅에 들어 올때 미국의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게 전개 되었고 처음에는 사랑노래가 많았었다. 아마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 트윈폴리오의 송창식, 윤형주그리고 그들의 후배 김세환 같은 가수였고 파격적인 부분은 한대수 ,김민기 그리고 생계를 위해 학생가수로 뛴 양희은 등이 있었고 특히 한대수의 경우는 기존의 분업화된 작사.작곡. 노래를 직접 혼자 다 했고 당시 자신이 겪은 느낌과 철학을 자유로운 모습으로 전파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김민기에게 갔고 미국으로 한대수가..

음반이야기 2017.08.29

한대수의 음반

48년 부산출신이지만 가족 특히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생활의 변화가 있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다니다 다시 미국에서 생활을 하였고 사진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장발단속의 규제에 히피로 낙인 찍혀 음반을 발표하기가 힘들었던 당시 세시봉에서도 활동을 하였으며 군대도 다녀오고 취직과 결혼도 했으며 기자로도 활동했었다. 그러나 앨범을 취입한 후 금지곡으로 묶여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스튜디오에서 일을 한다. 그는 생각보다 유연한 사람이었으며 체제나 사상에 대한 생각보다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느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 ' 자신을 신이라 생각하는 시람을 싫어 한다고 했다.' 또한 어떤 이념 ( ism) 보다는 사람을 생각하며 어쩌면 동양의 도교사상 처럼 집착을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 ..

음반이야기 2017.08.28

통키타 그리고 양희은

70년대 통기타 음악의 공연장이었던 쎄시봉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온적이 있었다. 과거를 추억하고 오늘날 힘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라 본다. 70년대의 상징 청바지, 통키타. 생맥주는 당시의 시대를 설명하고 청년정신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나는 송창식이나 윤형주 같은 트윈폴리오의 노래도 노래지만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들의 경험이 그들에게 나름의 명곡을 부르고 만들게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단 송창식과 윤형주는 훗날 이야기 하기로 하고 그들 보다는 후배들인 김민기 그리고 그 중 양희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떤이들은 양희은의 남편은 김민기로 알만큼 친한사람(어떤이는 최불암의 부인이 김혜자로 알듯이) 이며 김민기의 소개와 그의 곡으로 가수의 연을 맺었다. 김민기가 대학생이었고 양희은은 재수생..

음반이야기 2017.04.30

사라져 가는 비디오테입

요즘은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종편을 검색하면 지나간 영화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찾아서 볼 수 있다. 화질도 좋고 무료에 가깝다 보니 비디오 테입은 찾는이가 별로 없고 대여점는 폐업한지 오래다. 벌써 15년전 비디오테입은 사라져가고 가격은 추락했고 가지고 있는 이도 별로 없다. 카셑트 테입보다 더 빨리 도태되었고 VTR 또한 중고물품 판매장에 가면 쌓여 있지만 찾는 이가 없다. 그러나 책과 마찬가지로 자료의 원천이기에 막상 보고 싶은 영화나 영상을 구하려면 쉽지 않고 어떤 이들은 과거의 영상을 비디오테입에서 복원하여 관리를 하며 돈을 받아 팔기도 한다. 특히 TV문학관이나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방영되던 극화들은 당대의 문화를 알수 있는 증거이고 국산영화 즉 방화를 편집해 만든 비디오테입 중에는 독재정권시절 극장..

음반이야기 2017.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