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4.19혁명 기념일이 지났다.
혁명의 원인은 3.15부정선거였고 이승만 정권의 2인자였던 만송 이기붕이 자신을 당선 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이승만은 인기가 많았고 지지율도 높았다.
정치문화로 신민형과 향리형이 지배적이던 당시 말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스스로 뭘 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급선무였고 전쟁이 끝난지 7년 정도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하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군은 당시 전쟁을 겪으며 모인 청년들의 불만들이 많았고 부상을 당하여 제대한 사람들 또한 대책없이 흘러가는 사회에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전투력을 기르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문맹자들을 없애기 위해 문해교육과 함께 제대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이 있었다.
쿠테타의 분위기가 동란이 길어진 시기 부터 있어 왔지만 이용문의 사망으로 주춤한다.
4.19의 결과는 허정과도정부가 만들어져 민주당의 장면내각으로 연결 경제개발 계획도 세우고 다양한 인력들을 각 지역으로 내려보내 야심차게 출발하려 했지만 민간인들 보다 먼저 조직적으로 준비된 군인들이 가져간다.
국민은 군을 지지하고 박정희는 권력을 민간에 넘긴다고 했고 그 약속은 자신이 민간인이 되면서? 지켜진다.
그리고 국민은 표로 군인들을 지지한다.
세월이 흘러 60여년이 지났고 지역에 기반을 둔 우리의 정치의식은 많이 변화했다고 보지만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는 시민임을 강조하고 더불어 사는 걸 이야기 하지만 정치문화는 과연 시민임을 깨닫고 있고 더불어 살고 있는지를 반문하며 1960년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권위주의적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어야 계속 발전하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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