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창설 시기를 놓고 포병 대대 마다 누가 제일 빠르냐 따지게 되는데 일단은 병력을 모아 영등포에 사령부를 만들어(48.10.25일) 미리 교육받은 장교들과 기간요원들에 의해 편성이 된다.
당시 6개 대대가 만들어 지는데 1,2,3,5,6 총 5개 대대가 만들어 지며 처음 38선에 투입한 건 대대 단위가 아니었고 앞서 말한 노대현 중위의 기사문리 포격사건이 있던 시기로 포대라는 말은 없었지만 이때가 처음이며
그리고 49.4월 남한산성에서 최초의 실탄사격이 이루워졌다. (시기로 보면 노재현 중위의 기사문리 포격사건이 약간 빠른데 2문을 동원 직사를 하고 차후 곡사를 함)
장은산 중령이 이 때의 사령관이었고 정권차원의 도움도 있었으나 신태영장군의 아들이며 포병의 경험이 많은 신응균대령이 오면서 '포병연대'로 개칭하고 M3 105mm곡사포도 이때 보급이 완료되었는데 총 91문이 있었고 이것을 대대마다 15 문씩 배치하고 1문은 교육용으로 배치했었다고 한다.
원래 대전차화기였던 57mm 포는 포병사령부 예하의 대전차 포병단을 편성해 놓았었는데 이는 포병사령부의 관할과 함께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신응균대령이 오고 포병연대로 바뀌면서 57mm대전차포병은 중대단위로 나눠서 전방의 보병연대로 내려보냈으며 이때 부터 보병연대를 지원하게 되었으며 (이 뿌리를 현재 전투지원중대의 106mm무반동총 소대가 짊어진다고 보면 된다.)그 유명한 심일 소령도 병과는 포병인데 보병부대 소속이 되고 야전포병에서 대전차 포병은 빠지게 된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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