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박씨부인전과 실제전쟁

lkjfdc 2018. 10. 31. 14:02

 

 

 

70년대 중반 유행하던 사극이 있었다. 별당아씨라는 드라마였고 당대 유명한 배우였던 홍세미가 주연을 했었다.

 

훗날 보니 박씨부인전이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했고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걸 씻기 위해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이 이야기 말고 일지매라든가 임경업전 같은 이야기도 당시 상황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박씨부인전 처럼 신출귀몰한 사람이 나타나서 청나라 군사를 고난에 빠지게 하고 장수 용골대 마부대를 꼼짝 못하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고 어쩌면 임진왜란 보다 비참한 사건이 바로 병자호란이었다.

 

인조반정을 틈타 집권한 인조는 선조와 마찬가지로 도망 다니기에 바빴고 당시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사대주의와 함께 국가의 군비나 경제능력 군사동원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청나라와 한판 붙자는 논쟁만 하다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삼전도 까지 걸어 나와 치욕을 당한다.

 

남한산성에서 걸어 나오기 전 외곽에선 각지역의 군사들이 청나라 군사들과 접전을 벌이지만 크게 이길 수 없었고 여성들은 치욕을 당했고 광주의 낙화암에서는 치욕을 겪느니 죽겠다며 몸을 던진다.

 

군사들은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싸웠으나 전세는 역전되지 않았다.

 

청나라 군대의 기병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당시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임진왜란 당시 도망간 선조와는 달리 전쟁을 몸소 격었던 광해군은 그 폐해와 고통을 알았기에 명과 후금사이에서 줄타기를 했고 군비를 확충하고 백성을 살리고자 노력을 했지만 당시 지주인 양반들은 자신에게 부담을 주는 세금을 내는데 주저했고 광해군을 몰아내는데 힘을 기울인다.

 

광해군이 명나라의 은혜도 모르고 후금과 내통한 자이고 천륜도 거역한 인간으로 찍히면서 반정에 성공한 인조와 그 주변의 실세들은 광해군이 하던 일들에 관심이 없었다.

 

 

의리도 좋고 명분도 좋았지만 나라형편과 백성들은 안중에 없었다.

 

다시 전쟁이 나도 임진왜란 당시 처럼 의병이 나라를 구한다는 보장이 없었고 있더라도 걸어다니는 일본군과 날라다니는 만주족의 기병은 차원이 달랐다.

 

전쟁은 의지도 중요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실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산속으로 숨고 산성으로 올라가 싸우던 조선군을 피해 대규모 기병을 앞세워 달려온 자들을 각고을에 쌓아놓은 국고와 무기들은 획득하여 더 강해졌고 조선군은 고립되고 한양의 백성들은 도망갈 시간 조차 확보하지 못했고 왕과 신료들 또한 부랴부랴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지만 고립을 자초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일본에 의해 역사가 단절되고 이 땅은 해방이 되었다고 했지만 분단이 되었고 큰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되고 사람들은 겉으로 단합된 힘을 강조하고 자주국방을 외치지만 여전히 초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나라이름만 바뀌었지 여전히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물론 경제규모도 커지고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전쟁의 부작용은 여전히 상존해 있다.

 

박씨부인같은 나오는 초능력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이며 불가능하다.

 

역사는 현실이며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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