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교육과 문화 그리고 이승만 정권

lkjfdc 2024. 3. 10. 14:40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에는 교육을 활성화 시켜 문맹률을 낮추고 민주시민을 길러 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단은 맞는 부분도 있지만 그 기반을 만든 조직은 미군정과 당시 교육인사들이고 그러함에도 초등학교 교육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지역유지들이나 학부모의 회비가 없이는 운영이 될 수 없었고 이 마저도 낼 수 없는 경우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정권  초기 초등교육비(초기 70%이상은 후원회비와 사친회비 였으며 완전히 사라진 건 1962년)의 비중은 높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역 특히 군대가 주둔한 한강이북이나 후방이라도 군인들이 주둔한 지역의 주민들은 군에서 세운 공민학교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어 군부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독립운동가로서 이승만이 외교론이다. 해서 나름 합리적이고 강대국의 도움을 이끌어 낸 부분이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은 탁월할지 모르나 자신이 앞에 서야 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나 세력에겐 매몰찼던 인사이다.

민주주의를 교육받고 박사까지 취득한 지식인이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측근의 말에 의해 초기 장준하가 주도한 기관지 '사상'을 없애는데 영향력을 행사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장준하 선생은 의욕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 잡지를 만들고져 준비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료로 무언가를 주면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을 하고 함부로 하는데 이 책이라도 계속 만들기 위해 장준하 선생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출판을 하지만 당시 이 책을 만드는데 서북지역 특히 안창호를 따르던 흥사단 회원들이 참여를 하는 것에 못마땅한 부분이 있었고 백낙준의 도움으로 장준하 선생이 이러한 일을 추진하자 백낙준을 견제하고자 하는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는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친분등을 이용 이승만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결국 '사상'이라는 잡지는 없어지고 장준하선생은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에 있는 정부기관을 어렵게 찾아가(당시엔 교통이 안 좋았고 한강을 건너기도 힘듬)어렵게  허가를 맞고 다시 시작한 것이 그 유명한 잡지 '사상계'였고 이 잡지는 문화계에 큰 영향력을 주기도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도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어렵게 시작한 출판은 측근 중에서 그릇된 인사의 방해와 그 말에 영향을 받은 대통령에 의해 중단이 된다.

어용잡지가 될 수 있던 '사상계'는 어찌 보면 독재자의 영향력을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오히려 자유 민주주의 발달을 가져온 계기가 된다.

다음으로 1953년 대통령은 주변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한글날' 한글 간소화를 하자며 어려운 한자를 폐지하고 당시 문법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전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주장을 한다.

듣기엔 좋아 보이지만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다.

대통령의 선언이니 불만이 있었겠지만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은 밀어 붙었겠지만 당시 일선학교나 학계 그리고 많은  문화계 지식인들은 반발을 한다.

해방이 되고  새로운 교육을 하고 전쟁을 치루고 휴전이 지난지  얼마 안되는 시기 대통령은 시대 착오적인 조치로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선진국가라는 미국에서 박사가 되고 유학전 독실한 신자가 되었던 그는 정작 통치자가 되어서는 공산주의자만 적으로 삼은 것이 아닌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한 인사들을 힘들게 했다.


민주주의는 상향식 의견을 만들어 내고 시민이 나서서 찾아야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과 자신의 정부요인들을  그렇게 본 것 같지 않다.

배운 것과 실행하는 것 권력이 없을 때와 있을 때 다른 행보를 보인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