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이승만 정권 이후의 변화

lkjfdc 2024. 3. 8. 11:39

6.25전쟁은 인구비례 군부의 비대화를 가지고 왔고 말은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했지만 일제가 하던 군국주의 보다 인구비례  더 큰 규모의 군대를 (일본군의 경우 대부분은 일본인이었지만)만들었으며 북한 못지 않은 청장년층 남성들이 원하지 않음에도 군인이 되었다.


이것이 좋은 점(청장년들의 교육과 사회화,)도 있었으나 사회에 부정적인 측면을 제시한 부분도 있었다.

전쟁을 치루며 정상적이고 긍정적이지 않은 한쪽으로 쏠린 우리나라의 경우 여당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고 군부 또한 정상적이지 않은 집권당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승만을 이은 박정희 정권은 군에서 전역하거나 퇴역한 인사들을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켰고  다른 측면에서는   견제를 하기 위해  이들은 외교라인에 투입한다  외교의 다변화는 쉽지 않았고 속칭 자유우방에 치우쳐 있어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해방이후 군정 그리고 정부수립 이후 민간정권이 수립된 듯 하지만 정규군 이외에 호국군이니 방위군이니 해서 성인 남성들은 조직화 되었고 중고생은 군사훈련을 받았으나 좌우익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6.25 그리고 이승만의 장기집권 이후에 이어진 장 면 내각이 잠깐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군사적인 조직이 일반사회에도  계속 유지되었고 국민들이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건 위험을 각오한 반국가적 행위가 될 수 있었다.


간판은 자유민주주의였지만 일본의 지배를 받고 미군정 이승만 정권 6.25 사변 그리고 계속되는 군부의 집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군사력의 강화 이후 주변 강대국의 외교형태의 변화등으로 우리는 전체주의적이고 비상체제에서 살았으며 아직도 머리속에는 레드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고 집권자들은 자신의 정책에 반하거나 저항을 하면 그들을 좌익으로 몰았고 이 지도자를 편드는 국민들도 구분을 짓고 보수니 진보니 하여 싸움을 부추겼다.

그 씨앗을 뿌린 건 일제강점기부터라고 보며 이러한 것에 대한 해결이 없이 집단을 양쪽으로 나누고 수많은  사람들을 눈치 보게 하고 싸우게 한 책임은 당시 지도자들에게도 있지만 거기에 편들지 않으면 불편하고 힘든 이 사회의 문화도 한 몫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갈등을 부추기고 보수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결집 자신의 편을 들지 않으면 어리섞은 사람이 되고 어찌보면 특정 종교인들이 강조하는 구원 못받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혹시 깊은 고민이나  독재자들에 대한 분석 보다는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고 뭔가 깨달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동참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