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한강다리 폭파를 둘러싼 논란

lkjfdc 2024. 2. 24. 03:45

최근 이승만의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먼저 서울을 빠져 나간  후 대구로 갔다 대전으로 올라오며  서울에 북한의 전차가 들어 오자 위협을 느낀 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한다.

문제는 한강 이북의 시민들과 국군 그리고 수많은 장비와 군수물자가 내려오지 못한 상태였고 이후 시민들은 각자 적치하에서 살길을 모색했고 군인들 또한 각자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한강을 넘거나 서울시내에 숨거나 산으로 숨는다.

이후 벌어진 문제는 차차 이야기 하기로 하고 당시 한강다리 특히 한강대교라고 말하는 한강인도교의 폭파와 그 이후 사망한 사람들이 시민들이냐 군경이냐? 아니면 섞여있느냐? 사망자가 부풀려 졌느냐? 정확한 인원은 무엇이냐? 로 해서 일부 유튜버들은 나무위키백과나 기타 자신이 알아낸 내용을 소개하며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인터넷 나무위키에서도 외국인 기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또한 모 연구자의 의견을 토대로 민간인 피해의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고 소개한다.





그런데 내가 살핀 독립기념관 쪽의 자료 세권과 과거 일본에서 출판한 책을 번역한 내용엔 500~800명이 나오며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이라는 책의 212p '카이스 비치'라는 시카고 데일리 뉴스 기자는 한강다리에서 수많은 피난민을 목격했다고 나와있고 폭파될 때 짚차가 팅겨 나갔다고  하고 동료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증언을 한다.
아무튼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다 폭발해서 사망하거나 다친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그 숫자를 놓고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하고 더 나가 군경 수십명만 사망했다! 결론을 낸 것 같다.

그 이유는 다리를 입구에서 차단을 했고 군인들 조차도 건널 수 없었기에 민간인은 다리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며 결국 통제를 하고 철수하던 경찰 그리고 다리위의  헌병들만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한강대교의 중간을 자른 것이 아니고 용산쪽의 윗부분을 잘랐기 때문에 다리가 절단되면서 폭발한 충격과 떨어져 익사한 인원은 군경이든 민간인이든 얼마 안될 수 있겠지만 용산쪽 파출소와 그 근처에 대기하던 차량 당시 증언에 의하면 삼각지까지 밀리던 수많은 피난민 그리고 강안에서 다리입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감안한다면 500~800명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보통 155mm고폭탄 한발이 떨어질 때 폭음과 연기를 보면 별거 아니더라도 살상반경이 50m이상이며 파편은 더 멀리 날라간다.

그러나  다리에 여러발  쏘아 봐야 다리는 그정도 충격으로 끊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폭격기가 폭탄을 명중을 해야 끊어지는 데 한강대교는 폭이 좁은 것도 아니고 교각의 상판과 철제구조물이 부러지고 주저 앉을 정도면 상당한 양의 폭약을 썼을 것이고 그 충격으로 파편이나 폭음 충격은 강을 건너기전 모여있는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본다.

다리가 절단된 위치는 다리입구에서 길게 잡으면 200m 좁게 잡아도 100m 인데 독립기념관의 자료를 보면 사진을 거꾸로 하다 보니 강북과 강남이 바뀌었다. 오류라고 보며 사진의 방향을 제대로 펼쳐봤을 때 다리 입구의 충격이 컸다고 보며 뒤에 넓은 공간이 있고 이곳에 모인 사람과 차량에도 피해가 컷을 것이라 보고 백사장에 모여있던 인파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한강은 폭이 좁았고 지금의 노들섬 남쪽 부터 노량진까지 한강인도교가 있었고 (아아치 부분) 북쪽의 아아치와 다리를 폭파시킨 것이다.


     다리입구에     1950년 6. 27일 새벽2시 노량진 쪽으로 2.3.5 아취를 폭파했다고 기록함.


그리고 옆의 한강철교를 끊기 위해 미군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여  철교가 파괴되는  폭발장면을 보면 적어도 한강 인도교가 공병대의 폭약으로  파괴될 때도 계산을 하였을 것이고  금속구조물인 아아치가 파괴될 정도면 그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라 추측한다.


지금 노들섬 남단 그리고 백사장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피난민들이나 군경의 피해가 크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정확한 증거자료가 남아 있지 않고 증언하는 이들의 기록도 제 각각이지만 500명 넘게 희생 되었다는 것이 남아있는 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독립기념관의 자료를 그대로  쓰지 못하는 건 그놈의 저작권 때문이지만 내가 분석한 내용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승만의 다큐멘터리를 놓고 편을 가르고 싸우고 있는데 일부 유튜버나 역사강사의 내용으로 사람들을 흔들지 말고 수많은 학계 전문가들이 연구한 사실을 내놓았으면 한다.


대학이 한 두개도 아니고 전공자나 학자도 한 두명이 아닌데 왜 조용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