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신해혁명과 우한

lkjfdc 2023. 11. 13. 12:05

코로나가 처음 시작된 곳이 중국의 우한(무한)이다.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질병으로 인해 이 도시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양쯔강을 거슬러 위로 가면 충칭이 있고 더 오르면 청두나 쿤밍(곤명)등이 있고 고산지대와 고원지대가 발달하는데 우한의 경우는 수로교통과 철도 그리고 항공교통도 발달한 지역이다 보니  옛부터 교역의 중요한 지점이었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이 지역을 봉쇄하고 뭔가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데 과거 이곳에서  중국의 신해혁명이 시작이 되고 청나라가 붕괴하기 시작을 한다.

우창봉기로 시작된 신해혁명은 군사적인 행동이 우선이었으며 이 군인들은 무장만 신식이 아니었고 새로운 사상을 교육받은 세력들이었다.

신해혁명은 말 그대로 돼지띠(해년)1911년에 일어난 혁명이라는 뜻이고 제정이 아닌 공화정을 목표로 하여 들고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도 1907년 부터  비밀조직 신민회가  공화정을 목표로 활동을 한다.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대한제국에서 미국을 다녀온 안창호를 중심으로 시작이 되는데 회원 숫자가 800여명으로 늘어나며 핵심구성원은 알지 모르나 대부분은 회원 서로 간  알 수 없게 조직을 한다.


다양한 직업구성원이 있었으며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흔들리지만 신민회 회원들은 이 후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이들 중엔 군사적인 활동을 추진하고자 하는 인사들이 있어 만주 삼원보에 신흥학교를 만드는데 이들의 활동은 광복군의 활동으로 이어진다.

또한 신민회가 있을 때도 서북지방과 기호지방에 다양한 학교가 만들어 지는데 어떠한 정치적 행동과 움직임에는 소수의 명망가만이 활동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독립협회가 있던 당시 아니 그전 갑신정변 때 부터 알았을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군사적인 뒷받침과 여기에 자본이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고 국내외의 협조와 외교적 노력 또한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시민으로의 각성과 함께 다양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먼저 모이고 단결을 하고 백성을 일깨워 신민에서 시민세력을 형성했다면  우한의 봉기보다 더 빠른 일이 발생하고 중국 보다 먼저 공화정을 이루고 국민이 주권을 갖는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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