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전 우리국군의 숫자가 10만 북한이 20만 정도 였다.
국군이 생기기전 국방경비대란 이름의 더 작은 규모의 경찰예비대가 있었는데 이 조직의 장교를 양성하던 군사영어학교엔 일본육사, 만주군관학교, 학병출신 ,소수의 광복군등 서로 어느 정도 연결이 되고 아는 이들이(110여명) 모인다.
당시 고문이 이응준이었고 부교장이 원용덕이었는데 이응준은 일본군 출신을 원용덕은 만주군 출신을 추천한다.
특히 북에서 부터 알고 지내던 그리고 공산정권에서 과거 일제강점기의 전력이 있던 이들 중 백선엽 , 김찬규에서 개명을 한 김백일, 최남근 등은 초기 군사영어학교에 소속만 되었고 실제로 백선엽은 부산에서 최남근은 대구 김백일은 익산으로 내려가 부대를 창설한다.
이들은 당시 실세였던 이응준 , 원용덕의 힘 때문이었는지 또래보다 먼저 대대장 급 지휘관이 되고 연대장도 되며 정보국의 책임자가 백선엽이다 그리고 정보학교 초대 교장이다.
또한 밑에서 많은 이들을 잡아서 조사한 자가 김창룡으로 해방전 일본 헌병 보조원에서 오장이 되고 해방이 되자 북에서 지인들의 신고로 고통을 받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쪽으로 내려온 자다.
이승만의 총애를 받으며 47년 소위로 임관한 이후 6.25를 거치고 56년 총격을 받고 사망할 때 소장이었으며 이후 중장으로 추서가 되는데 아무리 전쟁통이라 할 지라도 엄청난 승진을 했으며 고급장교들까지 혐의를 두고 조사를 하니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암살을 당하며 많은 고위급 장교들이 의심을 받고 불려다닌다.
군의 창끝 전력은 전투를 주로 하는 보병부대 지휘자와 지휘관이 되어야 하는데 창군 초기 부터 특정인의 힘을 빌려 젊은 나이 해방전 군경력 보다 높이 평가되어 또래 보다 높은 자리와 중요보직을 해방전의 인연을 통해 같은 지역의 군사학교 출신들끼리 하고 후배가 선임이 되고 그 후배가 실세가 되면 과거의 질서가 뒤바뀌고 그 아래에서 권력에 굴종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던 이들이 군을 장악한다.
문제는 정부 수립 이후 군 통수권자가 이들의 옥석을 가리기 보다는 사적인 감정에 의해 자신의 오른팔로 쓰고 또한 이들의 충성경쟁은 억울한 결과를 만들어 군을 분열시키고 의심하게 만들며 그 결과 군의 전력은 약해지고 미군 또한 우리군을 신뢰하지 않았다.
특정 인맥 특정 군사학교 출신 그리고 사적인 인연이 강한 이들이 밀어주고 땡겨주는 군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물론 인맥을 이용하여 좋은 공적인 결과를 만들수 있지만 거대해지는 군에 이것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면 그 결과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가치가 전도되고 본질적인 업무를 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친일파 청산이 안된 상태에서 새역사를 창조한다는 건 병을 고치지 않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본다.
김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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