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일본군 지원병을 환영했던 친일파들

lkjfdc 2023. 3. 3. 19:49

일본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이땅의 인력과 물자를 수탈한다.


특히 군병력을 모으기 위해 골몰을 하는데 근본적으로 조선과 내지인(일본인)들을 차별해 왔기에 총을 주고 군인을 만들기엔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러나 1937년 총독부의 합의를 거쳐 1938년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된다.

공포되기전 육군 중장 조성근, 중추원 참의 최린, 박춘금,  동요회(일제의 작위를 가졌던 친일단체) 이사 김호규등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다음으로 사회의 저명인사? 들도 담화문을 발표한다.

박두영(포병대좌 출신), 박승직(공익사 대표), 어 담(한말 시종무관), 윤덕영(자작), 정 훈(조선군 보도부 중좌)등이 그들이다.

아무튼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인사들이 참여하는데 여기엔 학계,종교계, 여성계,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이들이 나선다.


윤치호, 한규복, 조병상 , 김활란, 모윤숙, 박순천, 박인덕, 임숙재, 임효정, 최정희, 허하백, 김동환, 박영희, 이광수, 장혁주, 주요한등이 있고 지원병제를 선전하고 영화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1939년 9월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지금의 육군사관학교 터)에 훈련소가 만들어지고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지역에 훈련소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지원자(소학교 졸업이상 17세, 160cm)를  1938년 부터 1943년까지 802,047명이 지원을 하지만 입소한 지원병은 17,664명으로 기대에 못미친다.

근본적인 이유는 학력이나 체력의 문제보다 교육칙어나 황국신민서사암송등을 못하니 총독부는 당황을 하게 된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 언어,풍속,습관 사고 방식등이 내지인들과 달라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광수'같은 이는 사회전반에 걸친 일본적 수정을 주장하였다.


결국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은 극에 달하게 되며 식민지 조선은 더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참고문헌: 임종국,  일제침략과 친일파 p13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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