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인터넷의 댓글을 보면 근거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사실인 것 처럼 써놓는 경우가 있다.
가끔 6.25 전쟁에 대한 댓글을 보면 근거 없는 내용을 확신하고 이것이 사실이 되며 자칫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고 편견이 될 수 있다.
6.25전쟁은 북한의 도발로 이루어 졌으며 처음엔 지상과 바다에서 국군과의 전투만 있었지만 일본에 주둔한 '미 공군'의 지상폭격이 이루어 지고 오산의 죽미령 전투에서 처음으로 미 지상군인 스미드 부대가 UN군의 이름으로 북한군과 싸우고 패한 후 일본에 주둔했던 24보병사단 본진이 건너오게 되며 시일이 걸려 미 본토의 대규모 병력이 건너온다.
당시 미군은 군병력의 수를 줄인 상태라 급하게 예비군도 소집하고 심지어는 병과학교 교관과 조교들까지 전쟁에 투입을 하며 후에 워커장군이 지상군을 지휘한다.
경부선 라인을 중심으로 아래는 미군이 주로 작전을 하고 충북 그리고 경북의 내륙과 산악 울진 포항은 국군과 해군 육전대(해병이 아님)대가 작전을 하고 충남과 전북 전남 그리고 서부경남은 미육군이 경부선을 중심으로 작전을 하고 육군과 해병대 경찰 그리고 방위군이라는 비정규군이 투입되어 밀리다가 경상도 서쪽도 빼앗기고 '민부대'라는 연합부대를 만든다.
애초에 국군과 미군의 큰 작전은 호남에서 이루어 지지 못한다.
우리 해병대가 전북 군산, 충남 장항에서 북한군과 싸운 것이 정규전 중에서 유일하고 전라도 지역은 초기 광주나 전주에 주둔했던 부대들이 초기에 북한군을 막느라 서울과 경기도에 올라와서 부대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다음으로 초기 질서있게 후퇴한 부대는 춘천 홍천의 6사단과 강릉의 8사단 정도 였고 서부전선의 7사단, 1사단, 수도사단은 피해가 크거나 인원이 없어 다시 편성을 했고 지역에 있던 2사단, 5사단, 3사단 또한 새롭게 편성을 한다.
주요 작전 지역에 전라도 지역은 없었고 서부 경남도 여러 부대가 막아보고 경북지역도 학도병과 해군육전대등이 투입하여 막았지만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남 알프스 지역에 남노당의 유격대가 있었고 이들은 동부 경남을 교란 시켰고 낙동강 동쪽의 지휘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당시 전쟁은 국군만 한 것이 아니었고 막강한 미군의 화력을 바탕으로 연합을 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던 김홍일 장군은 현장에서 제외되고 김석원 장군도 소외가 된다.
그러나 젊은 사단장 백선엽은 미군과의 합동작전을 잘 수행하다 보니 힘을 얻게 되고 군단장도 되고 동해안을 막게 되며 육군참모총장도 되고 최초의 육군대장이 된다.
"6.25전쟁에서 호남 즉 전라도가 점령 당한 건 지역주민들의 의지와 전혀 관련이 없다."
단 지역을 점령당한 이후 지역에 있던 남노당계열 조직이 부각되고 서부 경남이나 기타 지역에서도 노출이 되는데 이는 전라도 지역만 해당이 되지 않는다.
단 동부경남의 지하조직은 본격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사실을 이야기 하는데 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상대를 비하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군사영어학교는 지금의 '감리교 신학대 자리'에서 조직된 학교로 육군의 창설요원이 된 장교들이 교육을 받았고 육사가 된 조선경비사관학교완 다른 것이 맞다.
초기 군사영어학교엔 만주군, 일본군 출신 들이 주축이었고 후에 생긴 육사는 육군사관학교란 이름을 당시 쓰지 않았고 여기에 특별기수로 들어가 임관한 장교들이 군에 들어가 반발이 있기도 했었다.
역사 논쟁이나 정치 논쟁을 하다 보면 틀릴 수 있지만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잘못된 걸 당연하게 이야기 해서는 안되고 사실확인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기자나 언론인 그리고 학자들은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사실이 전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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