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지도이다.
1/20만의 지도로 자세하지 않지만 여러장 있으면 당시 우리나라의 지명과 산맥과 강 지금과 다른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
보통 군사지도를 쓸 때 야외에선 1/50000을 많이 쓰고 작전시 정밀함을 요할 때는 1/25000을 쓰면 좋은데 더 확대하여 자세한 것을 알아 내려면 측지반이 미리 사전에 정찰을 하여 기준점을 정하거나 정밀한 좌표를 만들어 관측소도 선정하고 미리 전개할 진지나 예비진지 추가진지를 만든다.
1/50000이나 1/25000정도면 자세한 대축척 지도라고 하여 좋은 정보 내지 과거엔 이러한 지도를 구하려면 예전에는 신분증이 있어야 살 수 있었고 80년대에 서울대 지리과 교수였던 이모교수는 대한민국의 대축척 지도를 통째로 북한에 넘겨줘 간첩으로 구속된다.
일본과 미국이 열대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 전투를 할 때 미군은 정밀한 대축척지도가 있었지만 일본군의 경우 준비가 되지 않아 교과서의 소축척지도를 이용 작전을 하니 그 결과가 좋을 수 없었다.
일단은 자세하게 만들어야 지형의 왜곡을 줄일 수 있으며 군용나침반이나 측각기에 그 지역에 맞는 도자각 (정량편차)을 적용 포사격시 설정할 수 있고 정밀한 사격도 할 수 있다.
6.25 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군은 대축척 지도가 잘 구비되지 않아 작전을 전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미국이 참전을 하면서 그 어려움을 줄이게 되지만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지도는 미군의 것을 번역하여 사용한다.
시간이 흘러 미군은 사막에서 전쟁을 하면서 종이지도도 사용하지만 GPS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작전을 전개하는데 지금은 우리의 일상에도 쓰이며 운전할 때 활용을 한다.
그러나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이것이 작동이 되지 않고 오류가 발생하면 낭패를 보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다.
100년전 서울과 경기도 동부 강원도 지역의 지명을 보면 지금과 다른 점이 보인다.
잠실은 확실히 강북의 영향권 아니 영향을 준 지형인 것 같다.
지금의 성동구 지역은 잠실을 포함 고양군 잠도면이고 정도전의 신도가를 보면 옛날 서울은 양주고을이라고 했는데 구한말과 일제때는 강북의 대부분이 '고양군'이었다.
약간 흐리지만 답십리, 청량리, 사근리, 행당리 등이 보이고 왕십리가 크게 써있고 현재 건대가 있는 지역은 잠도면에 위치하고 중곡리, 군자리, 능리, 모진리, 화양리등이 보이며 광진교 걑은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강동구 지역은 광주군 구천면이며 성내리,풍납리,등이 보인다.
송파구지역은 광주 중대면으로 삼전리, 마천리, 오금리,감일리, 문정리, 거여리도 보인다.
지금은 직선으로 정리된 탄천은 자유곡류천에 가깝고 양재천도 비슷하며 삼성리에는 절이 보이는데 봉은사라고 판단한다.
언주면과 대왕면 지금은 기록으로 남은 이름이 되었다.
100여년전 오래된 것 같지만 얼마 안된 것들일 수 있다.
돈이 좀 있으면 아파트를 사기 보다는 이런 돈 안되는 것들을 구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몇 장 있으면 박물관에 흐리게 복사한 것 전시하지 않고 정확한 몇 장을 게시하여 우리의 지난 모습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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