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은 수원에서 오산을 거치면 바로 나오지만 평택역은 송탄역과 서정역을 지나야 한다.
진위, 송탄, 서해안 쪽의 안중, 오성,청북등 각자 분위기가 다르고 특히 천안과 가까운 팽성읍과 지금 평택역이 있는 도심 원평동(평택동, 통복동, 군문동, 신대동)은 조금씩 다르다.
도농통합시이며 사통팔달 교통이 좋고 과거 바닷물이 아산만을 통해 들어올 때 수산물이 들어 오고 안성평택평야의 농산물이 모이는 곳에 기차가 지나면서 발전한다.
원래 평택의 중심은 오산 바로 아래 진위면의 봉남리 (진위향교가 있는 곳으로 초등학교도 가장 먼저 대한제국 시기 만들어진다.) 팽성읍 객사리(평택향교가 있는 곳)였으나 교통이 발달하면서 진위군청이 평택역 앞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해방전 진위군은 평택군이 되었으며 진위라는 이름은 현재 진위면이나 진위역등에 남아있다.
예전엔 지금의 평택시 남쪽이 충청남도 였고 북서쪽 화성 그리고 수원 동쪽의 안성 지금은 세가 약해진 양성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아래로 천안과도 교통이 편한데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군대가 아산만으로 들어와 성환에서 일본군과 싸운다.
지금도 해군2함대가 있고 공군작전 사령부가 있고 미공군기지가 있고 화성아래 부터 서해안 인근의 넓은 부지에 미군의 대규모기지가 있다.
6.25당시 우리군이 평택의 성동초교(보통 지명을 대표하는 학교가 오래된 경우가 많지만 평택시내의 경우 이 학교가 오래된 학교임)에서 1군단을 창설하여 초기 전력을 재편(군단장 김홍일 장군)하였고 평택역에는 군인들과 민간들이 모였었고 당시 105mm포병탄약을 적재한 화차가 평택역에 있었으며 유엔공군기의 오폭으로 역광장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죽고 포탄이 폭발하여 큰 화재가 난다.
평택역과 주변시가지가 큰 피해를 본다.
당시 포병부대의 책임자가 김계원중령이였고 사고를 수습하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철도 서쪽에 있던 평택역은 사라졌고 전쟁 이후 동쪽으로 이동을 하고 신 시가지를 조성했고 지금도 주요 기관은 기찻길의 동쪽에 많다.
전통적인 모습보다는 새로운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만 일제 강점기 땐 만세시위와 함께 언론인들의 활동과 야학 형평운동도 활발했고 좌우의 갈등도 심했었던 곳이다.
지금은 수도권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뜨이는 곳으로 땅과 바다의 교통이 발달하고 많은 기업체가 자리한 곳이며 문화유적도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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