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엘리트 체육을 하고 프로선수를 하던 사람들이 그 직업을 그만두고 (일찍 방출되거나 은퇴) 할 수 있는 일은 운동관련 사업이나 코치 아니면 모와둔 돈으로 식당을 차리거나 개인사업을 한다.
한곳만 달려왔고 그중에서 프로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성공한 것이고 대단한 업적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부상을 입으면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도 어려워진다. 성공은 했다고 하지만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고 유명인사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 틈으로 다시 간 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나간 영예나 그것에 따라 부여 받았던 소득을 생각하면 허탈함과 함께 새로 다른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면 미리 프로를 포기 하고 시험을 준비하고 대비는 하겠지만 그마져도 쉬운 일은 아니다.
중학교 때 권투를 하던 작은 체구의 과수원집 아들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일찍 체육관에 가서 훈련을 하고 전국체전에서 메달도 따고 고등학교도 특기생으로 그리고 대학도 체육특기생으로 갔다. 국가대표 상비군도 하고 국제대회에서 메달도 땄으나 당시 오광수선수 같은 큰 경쟁자가 있기도 했지만 프로의 꿈보다 임용고시를 보고 체육교사가 된다.
임용고시 특히 체육교사의 경쟁률을 엄청나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가산점 관리도 해야하는데 군대도 다녀오고 수험생이 되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지역에서는 프랭카드가 붙었던 유명한 이였으나 잊고 합격하여 학교의 교사가 된다. 그러나 권투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고 체육고 교사로 전근을 가서는 제자들 육성에도 힘을 쏟는다.
이름은 '황경섭'교사
다음으로 천안북일고 출신의 프로야구선수 '지화동' 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스포츠 신문을 장악하고 동생 지화선도 유명했었다.
지화동선수는 고교졸업 후 바로 프로로 간 것이 아니고 대학의 체육특기생이 되어 동국대 체육과를 간다.
90년도인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에 입단 경기에 출전하며 1군선수로 활약을 한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5년 정도 하고 그만두며 노래방 사업을 하나 1997년 IMF로 직격탄을 맞고 대학 때 취득한 중등교원자격증을 갖고 기간제 체육교사를 한다.
보통은 초중고 야구감독이나 코치를 했지만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고사를 준비하고자 수험생이 된다.
교대출신이 아니었지만 합격을 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그리고 최근에 KIA와 LG, SK야구단에서 프로선수생활을 하다가 (중학교 부터 대학까지 체육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님) 방출되어 임용고시를 준비 합격하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는 '윤정우교사'가 있다.
특히 윤정우 교사는 군대까지 포함하면 10년 가까이 프로에서 뛴 경력자이다.
초중고교까지 포함하면 20년을 야구만 했던 선수출신이 그 직업을 접고 갑자기 전문적인 일을 찾아 하기란 어렵다.
보통 유명세가 있고 경력이 있기에 인맥이나 소개로 감독 코치의 길을 갈 수 있었겠지만 위의 사람들은 경쟁을 택하고 험한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만 보고 지나온 과정에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 있다.
자신에게 쏟아졌던 환호나 영광을 마음에 접어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길은 또다른 후배들을 만들것이며 또다른 사례로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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