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웃기려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음성군이 있다면 양성군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음성 바로 위 안성시 안에 양성면이 있다.
지금은 면이지만 과거엔 독립된 군이 양성이었다.
지금도 향교가 남아 있으며 위로는 용인 처인구 이동면이 서쪽으로 오산이 가깝고 아래는 안성시내로 가는 길이 있다.
이 양성면 윗부분 용인과 가까운 곳 난실리에 시인 '조병화'님의 문학관이 있다.
편운 조병화 시인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학교 교사와 대학교수를 역임했는데 어릴적 진위천이 보이는 (지금은 이동 저수지로 바뀜) 난실리에서 출생한 후 초등학교는 인근 용인 이동면의 송전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이사를 가 학교를 다녔고 당시 수재들만 간다는 경성사범을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고 일본의 동경고등사범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 해방된 나라의 교사로 수학과 과학을 지도했고 틈틈히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다작인 편이며 어려운 표현 보다는 쉬운 표현을 했는데 가곡 '추억'의 가사도 썻고 중학교 시절 2학년 땐가 나온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시도 있다.
조병화시인은 경성사범시절 럭비선수로 활동을 했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 열심이었는데 그의 '시는 그림같고 그림은 시 같다.'는 말이 있고 경희대와 인하대 교수를 지내며 받은 급여와 책을 내고 받은 수입을 예금하여 나오는 돈을 후배 작가들에게 쓰고 자신이 돌아갈 안성의 난실리에 자신의 호를 딴 '편운재'를 만드는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묘소옆에 묘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헌:개구리 소리가 들린다.는 뜻'을 만들어 집필을 한다.
이러한 건물들은 시인이 틈틈이 만들어 관리 했고 그가 사용했던 물건과 책 각종 자료를 잘 정리 해놓아 정형화되고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기존 박물관이나 기념관과 다르며 시인 자신의 체취가 느껴지고 작품들을 잘 관리한 노력 또한 돋보였다.
일단 난실리에 들어가 문학관에 입장을 하면 소액의 입장료를 내고 안내를 받는데 '문화해설사'의 열정적인 설명 또한 인상적이며 비싸고 값나가는 가구나 인테리어가 없이도 소박한 뭔가가 더 멋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좋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내 일부러 찾아가기 보다는 안성과 용인을 지나다 한번 다녀 보면 좋은 곳 '조병화 문학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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