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군의 기간인 장교들이 지휘자나 지휘관 아니면 부대의 참모로 근무하며 병력들을 지휘하고 전쟁연습만 하는 꽉 막히고 독선적인 사람들의 집단이라 생각한다.
물론 많은 장교들이 징병제의 틀안에서 근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상당수는 단기복무를 하고 예비역이 되지만 소령이상의 고급장교를 하고 장기복무를 하게 되면 자신의 병과에 해당하는 부대의 장이나 참모도 경험하지만 보수교육을 받는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과거엔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등에서 초급장교들의 보수교육이 끝나지만 고급장교가 되면 육군대학등의 과정을 거친다.
또한 교육기간이 길고 공부도 많이 해야하며 시험도 다양하고 많다.
이런 것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50년대 60년대엔 주로 미국으로 가서 병과 교육이나 참모교육을 받고 그 속에서 여러 나라의 장교들과 인맥을 형성하기도 하고 군부쿠테타세력의 인맥을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고등교육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해외유학이 제대로 이루워 질 수 없을 때 군의 장교들은 군에 몸 담으면서 대학도 다니고 해외로 유학을 갔다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이걸 통해 외국으로 나갈 생각도 하고 정권 차원에서는 실세가 될 장군들을 전역시켜 외국의 교환교수나 연구원으로 나가 있게 하고 대사나 공사등으로 임명을 했던 경우도 많았는데 주로 친 서방국가였으며 비동맹국가나 분쟁지역은 조금씩 넓혀 나간다.
특히 현역 고급장교들은 대사관의 무관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는데 군사유학도 그렇지만 나가기전 외국어 교육을 자비로 하여 받기도 하였고 군사학교에서 받기도 했으나 부족함을 느껴 과외를 받기도 하고 현지에서는 통역장교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적응을 한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을 하고 가족들도 군교육기관에서 안보교육을 받고 기타 제반 교육을 받아야 함께 외국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해외 군사학교 시절 연결된 인맥을 적극 활용하며 외국군 장교도 이것을 통해 상호교류한다.
해외의 무관으로 파견될 경우 대사관의 업무에 참여 하기도 하지만 따로 외국의 군장교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여를 하고 이 과정에서 파악하는 정보를 국내로 보내고 또한 정보를 공개하기도 하여 적대국의 군인들과 선을 긋기도 하겠지만 제3자를 통하기도 하고 접촉을 한다.
비동맹 국가의 장교들에게도 국익이 될 정보를 파악을 하고 국내기업의 방산물자를 지원해주기도 하고 이런 걸 확대하여 수출의 발판을 만들기도 했고 일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간혹 야전군의 장군으로 진급을 못하기도 하고 대령계급으로 전역을 하거나 퇴역을 하지만 외국생활을 계기로 자녀교육도 하며 훗날 이민을 가는 기회로 삼기도 하고 국내로 들어와 다양한 곳에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국내에 머무르고 좁은 시야의 정치개념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통해 외교관만 행할 것 같은 외교를 하여 국익을 취하고 군사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것들을 얻어내기도 했다.
지금은 교민들도 많이 나가 있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정보가 들어오고 나가지만 과거엔 이런 것들이 제한되어 있었다.
국내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전방에서 지휘관으로 임기를 마치는 것이 아니고 진급에만 연연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 보다 꼭 군에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철권을 휘두르고 안보를 이유로 시민을 억누른 경우도 있었지만 전쟁이후 다양한 군의 인력들이 나라를 재건하고 외교관계에도 도움을 주고 성장 시킨점은 인정해야 하며 정치군인들과 쿠테타 세력만 군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