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야기

용인의 3.1운동

lkjfdc 2019. 3. 8. 10:33

 

 

 

지금은 용인이 100만 인구 도농통합시지만 100년전에는 3만명이 안되는 농촌이었다.

 

3.1만세운동의 경우 철도가 인접한 곳 그리고 교회가 발달한 곳에서 활발했었다.

 

그리고 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 이루워 졌다.

 

당시 용인의 경우 군민의 절반가량인 13200명이 참여를 했고 시위횟수는 13회 사망자 35명, 부상자가 139명, 피검자가 500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전에 의병들의 활동 또한 활발한 지역이었다.

 

서울에서 3월1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후... 용인에서는 3월21일 원삼면 좌항리 좌전고개에서 새벽3시에 200여명이 모여 최초의 시위가 발발했다.(1000여명이라는 주장도 있음)

 

3월28일 포곡면(현재 포곡읍) 금어리와 둔전리 그리고 3월29일 수지면 (현재 수지구)고기리 내사면 남곡리 3월 30일에는 다시 수지면 읍삼리에서 기흥면(신갈)에서 계속되었다.

 

3월31일 원삼면 4월2일에도 원삼면 내사면 등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경기도에서는 김포 다음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여 그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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