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깻묵과 쌀

lkjfdc 2019. 3. 5. 09:17

 

방앗간 앞을 지나는데 뭔가 포대에 쌓여 있는 덩어리를 보았다.

 

깻묵이라고 하는 것으로 기름을 짜고 남은 것으로 낚시의 미끼로 쓰거나 어항을 놔서 고기를 잡을 때 썼던 것으로 낚시점에서 가공하여 팔았었다.

 

듣기론 일제강점기 쌀을 수탈하고 이땅의 사람들이 식량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소나무 껍질을 이용해 떡을 해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농업국가였던 조선이 상대적으로 외국과의 무역에서 유리한 생산물이 쌀이었고 다음으로 일본은 산업이 2차와 3차로 전환을 하면서 농업인구가 이동을 했고 농업의 형태가 주곡농업위주에서 누에나 면화같은 섬유재료 또는 상업농업으로 변화했다.

 

곡식 특히 쌀은 조선의 것을 가져다 먹는 것이 그들의 산업구조에서도 효율적이었던 것이고 당시 조선의 곡창지대엔 '불이농촌'이라하여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생기고 이곳 또한 쌀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일본으로 보냈고 술을 만드는 공장들이 군산이나 목포에 생겨났다.

 

 

그리고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태평양전쟁까지 발발하니 일본의 본토가 식량으로 고통을 받으며 조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공출과 함께 식량은 배급이 실시되고 훗날 해방이 되어서도 식량문제는 미군정에서 골치 아픈 문제였고 혼란을 일으켰다.

 

물론 돈있는 사람들과 대지주들은 여유가 있었겠지만 많은 이들이 기회의 땅인 만주로 그리고 먹고 살기위해 일본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전쟁 이후에도 농업을 재정비 하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군사정부에서 내세웠던 것이 '민생고 해결'이었고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군인들을 지지했다.

 

 

어쩌면 지금도 서민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경제를 체감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바라볼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화 사회로 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현실적 만족을 주는 재화와 써비스가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본다.

 

봄이 오는 느낌이 절기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느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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