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원엔 커다란 유화 1점(100호)이었다.
유화가 걸려 있는 곳은 식사도 하고 상담도 하는 장소였는데 그 느낌이 싸늘했다.
당시 느낌을 이야기 하자 식사를 하던 전임원장은 뭔가 생각 난 듯 이야기를 했다.
"그림의 무대가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이야! 화가가 살던 곳이지..."
진부령은 과거 고성을 넘어 갈 때 대관령과 뭔가 달라 기억에 남고 특이한 건 인제에서 더 가까운데 행정구역은 고성군 간성읍(원래 독립된 군이었음)이라 이해가 가지 않았고 군사적인 측면으로 봐도 인제에 주둔한 을지부대가 관할 하는 거점이었고 바로 앞에 향로봉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을지부대엔 전설로만 존재하던 '스키부대'가 있었다. 그만큼 눈이 많은 험지였고 작전상 설원은 극복의 대상이며 훈련장소였다.
어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데 진부령은 과거 길이 외길이라 차도 교행이 안되던 험지였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관광지가 되서 버스도 많고 자가용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유명한 곳이다
진부령이라는 말과 함께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 자료를 찾다가 책을 찾게 되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우리나라 스키역사의 산증인인 '김성균 님과 화가이자 대학교수를 역임한 이정순 님'의 흔적이 바로 이 그림안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스키가 대중화 되기전 일제 시대 부터 스키장이 있던 진부령 마산봉이 있는 흘리마을에 김성균 이정순 부부는 70년대 초반 들어가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곳에 들어가 스키장을 정비하고 (다른 스키장도 유명하지만 진부령은 인공눈이 아닌 자연눈으로 3월까지도 눈이 쌓여 스키에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한다.) 알프스 산장이라는 산장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겨울 스포츠인 스키를 보급하기 위해 혼신을 바친다.
또한 김성균님은 오스트리아로 스키 유학을 갔고 두 자녀도 초등학교를 마친 후 오스트리아로 스키유학을 하며 국가를 대표할 만큼의 실력을 길러 이름을 떨친다.
첫째가 '김 명종' 선수였으며 감독도 역임했고 둘째가 '김 미나'선수였고 감독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스키의 대표주자였다.
어린 나이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했지만 대학은 다시 국내로 복귀하여 능력을 발휘했고 가족이 스키에 혼신을 바쳤다.
틈틈히 이정순님은 원래 전공을 살려 유럽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는데 당시 이들은 진부령이 개발되며 사기를 당하여 쫒겨나다 시피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갔으나 위기를 밟고 올라 다시 재기 하고 특히 이정순님은 병마와 싸워 이겨 다시 귀국하고 자신들이 꿈꿔오던 삶을 위해 더 노력하고 가족 전체가 서로를 격려하며 자신의 일을 찾아 진력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김성균님이 폐암으로 90년대 후반 고인이 되었고 큰 아들은 너무 일찍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 했다.(하지만 지도자로 재기한다.)
이 가족의 진부령 산속에서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 이 그림이 아닐까 한다.
유명한 화가가 그려서 라기 보다는 어려운 순간에도 늘 꿈꾸고 도전한 작가의 삶을 잘 표현했기에 이 그림이 더 가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PS: 이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구입을 원하시는 분은 031) 336-5900으로 연락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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