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꿈에서 군대에 다시 입대하라고 영장이 날라오는 꿈을 여러번 꾼다고 한다.
꿈에서도 나타나는 입대영장은 구속영장 만큼 무섭고 생각하기 싫을 수 있다.
그러나 난 이 꿈 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다시 대학을 다니며 학점을 못채워 졸업이 안된다는 꿈과 등록금을 못내 학교를 더 이상 못다닌다는 꿈도 반갑지 않다.
학점은 워낙 공부와 거리가 먼 생활을 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등록금을 못내서 학교를 못가는 꿈은 꿈이지만 너무 힘들게 느껴졌고 지금 다시 다니라고 했을 때 비싼 등록금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등록금만 들어가나? 집에서 먼 학교를 간다면 자취나 하숙을 해야 하고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움직이면 다 돈이었다.
군대에 가기전엔 동기들이나 선배들과 공부하다 학점이 낮거나 책이 없어도 정리된 노트가 부실해도 덜 부끄럽고 특히 여자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당하고 여자동기들 또한 시험을 조금 못봐도 교수님께 망신을 당했도 뻔뻔해 질 수 있었고 재시험을 봐도 그려려니 했었다.
그러나 복학을 하니 공부를 안했던 지난날을 후회해 봤자 변명이 되었고 후배들 특히 여자 후배들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앞서고 수업시간이 괴로운 시간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선배님! 하고 자료요청도 하고 책을 빌려가는 건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조별학습이나 팀을 구성할 때도 끼워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야유회를 갈 때도 칙칙한 분위기를 만드니 개별적으로 조를 만들고 어쩌다 후배들 앞에서 재롱을 떨면 주책이고 나이값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복학생중에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말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나와 대척점에 있던 녀석(교회오빠의 이미지)은 왜 그리 찾는 사람이 많고 여자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학교를 다니는게 그날 그날 쉽지 않았다.
생일 파티를 해도 복학생들 끼리고 대다수 여자후배들은 모임이 있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군대간 동안의 공백과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던 일부 복학생들은 어느날 (3학년 때는 군대간 학생들이 많아서) 남아 있던 남자 후배들(주로 학군후보생과 학사장교후보생들)의 생일모임에 초대가 되었다.(사실 초대라기 보다는 그집이 늘 복학생들 아지트 였다.)
학군 후보생의 경우 규제도 있고 소문이 나면 골치 아픈일도 생길 수 있어 고기는 못사고 몇 천원씩 돈을 내서 술과 과자를 사고 또 한 동기는 밀가루를 한 봉지 사가지고 왔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그날 따라 천둥과 벼락이 치는데 밖은 낮인데도 밤같이 어두웠다.
축축하고 끈끈한 분위기에 후라이팬을 휴대용 가스렌지에 올려 전을 부치고 비싼 맥주는 못먹고(먹을 수 있지만 후일을 기약) 막걸리와 소주가 몇 잔씩 돌고 얼굴들은 빨갛게 되고 문밖의 비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었다.
동기들 중 일이 있어 빠진 녀석이 있었는데 갑자기 비를 뚫고 나타났는데 무언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거 뭐야?"
"뭐 긴..."
그냥 오기 뭐 했다며 계란 한판을 사왔다면 옆에 있는 큰 냄비에 물을 넣더니 사람 수 보다 휠씬 많이 넣고 삶기 시작했다.
여자후배들에게 초대를 받고 환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날 그 분위기는 주변인으로 맴돌던 복학생들과 학군장교후보생이라 선배들을 피해 다니던 3학년 후배에게 암울하지도 쓸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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