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개봉관과 동시상영관

lkjfdc 2024. 6. 4. 20:23

지금은 영화가 나오면 짧게 상영하고 간판을 내리고 바로 TV를 통해 보여지지만 과거엔 개봉관에서 오래 상영을 하고 신문하단에 포스터를 넣은  광고를 계속했고 서울의 재개봉관은 가로모양의 폭좁은 광고를 했는데 포스터는 없었고 영화제목과 위치 전화번호만 있었다.



개봉관이나 재개봉관을 못간 어린시절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잘 끊어지는 필름을 받아 영사기를 돌렸는데 개봉관과 시간 차이는 났지만 두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 살때 바로 옆이 극장이라 마당은 놀이터에 가까웠고 대도시에 비하면 부족해도 빵집과 경양식집 중국집이 다있어서 좋았고 간혹 버려지는 필름조각을 주워서 햇볕에 비쳐보고 신기해 했었다.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에 잠깐 살 때도 연방극장이라는 동시상영관이 있어 만화영화를 본적 있었는데 당시 장호원은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고 접경지역이라 통행금지로 인해 밤이 되면 다리 건너 음성장호원이라는 감곡으로 어른들은 술을 마시러 갔다.

동시상영관이라도 극장이 있고 없고는 동네의 분위기를 바꾸었는데 충주엔 개봉관이 3곳 그것도 대형극장이라 학교에서 단체관람도 많이 해서 싼 비용을 내고 많이 갔었다.

그러함에도 서울의 충무로 극장에 대한 궁금함과 함께 독특한 극장간판과 크기가 극장규모에 따라 달랐고 광고하고 영화올릴 때 마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 직원아저씨를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명도를 자랑하는 극장들 엄밀하게 말하면  영화관의 경우  2000년이 지나 멀티플렉스 극장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도심의 개발이 활성화 되면서 건물이 없어지고 신문에 나오던 영화광고는 사라지게 되고 볼 수 없던 것 같다.

여유가 생겨 어릴 적 신문광고로 보던 충무로의 개봉관에도 가보고 접속에 나온 극장도 가보았지만 7~80년대 상상하던 그 모습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극장 주변의 군밤 팔고 오징어 팔던 모습은 지금도 있지만 암표장사가 호객행위를 하고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영원한 건 없다는 게 느껴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시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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