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은 이박사로 불릴 만큼 개화기 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교회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할 시기엔 능력이 있던 인사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혼란 6.25 사변을 겪으며 군통수권자로 보여준 행동은 실망 그 자체에 탄핵이 되어도 할 말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 알아내는 것도 좋겠지만 오래전 부터 집에 두고 보던 각종 자료와 책을 찾아 나의 뇌피셜이 아닌 당시 살았던 인물 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승만 대통령의 문제를 지적하겠다.
자유민주주의 어쩌고 하는데 이 대통령이 행한 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왕조국가의 왕이 하던 말도 안되는 명령이었고 그 아래 있던 행정부 고위직 공무원들도 힘들었겠지만 특히 장군으로 6.25동란을 겪고 나중에 초대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특이한 경우)이형근 대장의 회고록 그리고 당시 군 지휘부에서 근무한 장군의 회고를 통해 당시의 난맥상을 짚어 보겠다.
그밖의 6.25 동란의 말도 안되는 한강다리 폭파 사건에 대해선 잠시 접어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겠다.
이형근 장군은 군번 1번으로 장인이 이응준이며 둘다 일본군 출신이며 일본육사를 나온 사람들이다.
일단 친일인물인 건 인정을 하고 그가 증언한 내용을 살피겠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으로 국방경비대 시절 부터 군의 중심이 되었고 동란이 있기전 강릉의 8사단에서 대전 2사단으로 전속 사단장으로 임명되자 마자 바로 전쟁이 발발 의정부 전선에 투입을 하라는 명령에 격렬히 채병덕 장군에게 대들었지만 대통령의 지시라고 하여 일단 듣기는 한다.
그리고 한강다리를 끊는 것을 지연할 것을 강하게 당시 김백일 장군에게 말하지만 한강다리를 건너기전 북한군도 아니고 국군에 의해 폭파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져 치욕스러워 자결을 시도하지만 부관의 만류로 넘어 갔고 당시 이 명령을 집행한 것에 대해 작전상 대실수임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한강교 폭파후 철교옆에 목교를 만들어 피난 가는 것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민들을 버리고 한강이북의 국군을 버린 잘못된 조치였음이 이장군의 고백이다.
많은 문제가 있으나 다음에 이야기 하고 합참의장이던 이형근 장군이 1955년 경무대에 불려가 대통령 선거에 대비 육해공군에 대통령 선거 대국민 대책반(국민반)을 만들어 국민들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려 선거에 이길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관권선거 개입이며 3.15부정선거가 있기 전에도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다면 군대까지 동원할 작자였다.
이기붕 때문에 이승만이 욕을 먹는 것 처럼 말을 하는 데 '짐은 곧 국가다!'란 식의 생각이 박힌 사람이다.
그러나 이형근 장군은 거절을 하는 데 이러한 대통령을 보고 큰 실망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황당했던 건 합참의장에 임명을 하면서 고향을 묻고 충청도가 고향이라 하니 이북 사람들(장군들)을 항상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불쾌했었다고 전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쪽 출신인데 그 지역 출신 장군(정일권이나 백선엽)들에겐 어떻게 말했을까? 궁금하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이간시켜 분할지배하는 것에 대해 소문만 듣던 이형근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리더쉽에 실망을 했었다고 한다.
이형근 장군 말고도 당시 초급장교로 전쟁에 참여한 장군들도 이승만 정권의 미숙한 군인사 정책을 비판하는데 특히 지휘부를 구성하는데 있어 왜 경험 많은 김홍일이나 김석원(출신은 다르지만 지연전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작은 힘의 군대가 큰 군대를 대응하는 방법) 장군을 한직으로 돌리고 해임시켜 학교에 있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리지만 의정부 전선에 후방의 군대 투입을 반대한 이형근 장군의 주장을 묵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전쟁직전 38선을 방문하여 유재흥 사단장의 의견을 듣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은 미국측 인사를 왜 움직이지 못했는지 아쉬워 한다.
많이 배우고 똑똑했던 독립운동가의 변신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이런 사람을 국부니!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라 말하니 웃기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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