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60년대의 육군예하 군악대

lkjfdc 2023. 3. 7. 14:46

군대엔 사단급까지 군악대가 있고 이들은 지역의 행사에도 참여를 한다.

건군초기엔 연대단위에도 있었는데 당시 악기의 수급이 중요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60년대엔 육군본부 군악대(육본군악대:1946년 1연대 군악대가 창설되어 경비대 총사령부 군악대로 개칭 , 육본 군악대로 개칭 이후 53년 68인조 규모로 증편 )가  68인조 2/68  앞의 2명은 장교로 대위와  군악대장과 준위 였다고 한다.(여기에 1군악대가 직할인 것 같다  1군악대는 2/ 34   34인조)





그리고 육사 군악대도 68인조인데 보통 이 군악대 또한  인원이  많은데 육군본부  군악대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육사에 있다 보니 정부행사의 연주를 했다고 하며 육본군악대와 함께 군가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원주에 제7군악대(1953년 진해에서 육군직할로 창설 되었다가 육사에 예속 되었다가  개칭)가 있었는데 1군사령부에 소속되어  68명이 있었다고 하며 사령부의 행사나 강원도 지역이나 당시 야전군 주요행사에 참여한 것 같다.


한마디로 서울에 있는 육본 군악대 그리고 육사군악대가  원주의  7군악대의 규모가 컸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의 광역자치단체  마다 군악대가  있어 군행사 이외에 지역의 행사에 참여를 했던 것 같다.





대구의 2군 군악대(수도경비사령부에서 창설되었다가 진해에서 증편 )는 34인조로 대구나 경북도내의 행사 연주를 담당했고   부산의  군수기지사령부 군악대(제3 군악대: 53년 포항에서 창설)는 부산 경남의 행사 연주를 담당했다고 한다.

논산의  2훈 군악대는 훈련소및 가까운  전북지구 행사를 담당했고 광주의 상무대  전교사 군악대는 (10군악대:동래육군종합학교에서 창설되었다가 전교사 예속)로 광주와 전남의 행사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방지역인 한강 이남엔 관구라는 개념의 지휘체계가 있었으며 대전엔 특별히 3관구 군악대(6군악대로 53년 전북 군산에서 시작)가 있어   대전 충남의 행사를 담당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보통 34(2 :대위 준위 /34)인조였다.


각 사단 군악대는 28(1 대위 /28)인조였다고 하며 자신의 부대와 지역의  행사를 담당했다고 한다.

해병대는 초기 연대급에서 사단급으로 커지면서 군악대가 편성되고 또한 지역이 떨어져 있고 대도시에 주둔한 것이 아니니 부대의 행사나  학교 행사에 많이 참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육본군악대나 육군사관학교 군악대에  비해 군악대 편성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연주실력이 좋아 전역 후 연주자로 취업이 잘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악기수급이 문제라 나라의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징발을 해왔다고 하며 나중에는 예산이 편성되어 지원되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관학교에 조직된 육사군악대 , 제7군악대(후에 1군사령부로 예속)가 조직된 곳이 진해인 점이 특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