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대동여지도에도 나오는 함박도

lkjfdc 2022. 3. 29. 08:36








우리나라의 지리연구는 일제에 의해 이루워지고 20~30년대에도 지역을 알 수 있는 대축척지도는 일본에 의해 세세히 제작되어 남아있다.

구하려고 하면 몇 만원 정도의 돈을 주면 오래되었지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동란을 기점으로 미군이 측량한 것을 토대로 군에 대축척지도가 (1/50000, 1/25000)보급되어 전쟁에 쓰였고 북한의 경우 러시아의 군사지도를 보고 전쟁에 활용했다.

주로 항공촬영을 하여 만들었다고 보며 현재는 위성사진을 통해 우리기술로 만들었다.

그러나 70년전만 하더라도 휴전협정을 할 때 우리는 주도권이 없었고 남쪽은 유엔군이 휴전선을 북쪽과 협의하여 그었다.

우리정부는 계속 싸워서 북쪽의 미수복지역을 찾으려 했지만 많은 피해와 희생이 있던 우리도 심각했고 실제 돈을 대고 전쟁 터에서 많은 희생을 치룬 유엔군(주로 미군)의 경우는 전쟁을 중단하는게 당연했지만 포로송환문제 부터 제반 문제가 얽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으며 고착화된 진지와 화력전으로 인해 전쟁초기처럼 크게 밀리고 미는 형태의 전쟁은 어려웠다.

지금도 사람들은 6.25사변 같은 밀고 밀리는 전쟁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만 내 생각으로 판단할 때 지금의 휴전선을 넘기란 남북 모두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유는 무려 2년 가까이를 지금의 휴전선에서 참호와 굴을 파고 지뢰를 뿌려가며 싸웠기에 돌파는 어렵고 제공권이나 제해권이 있다고 하지만 도시화된 우리나라에 뿌려질 화력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있을 수 있어 전쟁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아무튼 휴전을 할 당시 유엔군이 주도했던 남쪽은 북한의 서부 도서나 동해안의 섬들을 대부분 장악했고 다시 분단이 되면서 철수를 한다.

단 서해5도(대청, 백령, 소청,연평,우도)의 경우 황해도 행정구역이었지만 남쪽으로 들어오며 바다에서는 휴전이후 큰 충돌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해군력이 강화된 북한군이 조업중인 어민을 북으로 데리고 가서 귀환을 시키기도 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서해해전이나 천안함사건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긴장이 높아지고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섬에 관심을 두게 된다.


바로 '함박도'란 무인도로 소축척 지도엔 나오지 않으며 중축척지도를 보면 300~400m정도로 보인다.

우리 해병대가 주둔중인 강화군 서도면 말도의 섬에서 약 7~8km떨어졌지만 북한땅 연백에서는 13km 이상 떨어져 있어 아무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군사시설물을 북쪽에서 설치를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휴전선을 긋고 그 이후 NNL을 선포한 유엔군과 미군의 당국자들이 더 잘 알것이라 보며 우리군도 그 영향력에 있었기에 알 것이라 본다.


아무튼 보통의 소축척지도에서 볼 수 없는 섬 '함박도'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엔 다른 섬들에 비해 자세히 나오며 당시 제작자의 관심도 있었겠지만 국토를 관리하고 특히 전쟁에 대비한 조치를 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말도엔 봉수대가 있었고 볼음도는 보을음으로 기록되어 있고 실제보다 작게 표현되어 있으나 봉수대가 있다.

주변의 석모도의 보문사는 당시에도 유명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석모도는 당시 두개의 섬으로 되어 있으며 지금과 지명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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