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광한루 풍경

lkjfdc 2022. 2. 3. 09:56








지난주 일요일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들렸던 곳 중의 하나가 남원 광한루였다.

광한루는 호남좌도의 명물로 춘향전의 무대이며 많은 방문객들에 의해 사랑을 받는다.

영남의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가 알아 주듯 광한루는 유명하며 남원과 등식이 될 만큼 상징적인 곳이다.

남원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 시대 5소경이 있을 때 북원(원주), 중원(충주), 서원(청주), 금관(김해)과 함께 포함이 되었는데 지금의 이름은 역사가 오래되었고 다른 이름으로 '용성'이라 하는데 용성초등학교,용성고등학교 용성중학교가 있으며 보통 지명을 나타내는 이름의 학교가 가장 오래된 경우가 많지만 남원초등학교나 남원중고교보다 용성초등학교와 용성고등학교(구 남원농고)의 역사가 오래된 걸 보면(용성이라는 이름은 후에 개명)남원이 농업의 비중이 컸던 것 같고 '용성'이라는 이름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데 고려말 지리산에 침입한 왜구를 이성계가 크게 무찌른 곳이 운봉읍에 있고 (황산대첩:운봉은 별도의 고을이었다.) 이때 적을 무찌르고 전주에 입성하며 왕이 될 결심을 한다.

임진왜란의 연장인 정유재란 일본군을 막다가 희생된 만민의 무덤인 만민의총이 있으며 남원성 전투 또한 진주성 전투 만큼 참혹했다고 전해지며 그 피해가 컸다.

또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시기에도 남원은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곳이다.

지금도 군사적으로 봤을 때 중요한 지역일 수 있어 지역향토사단의 여단(과거 연대)중 단대호 번호가 앞선 부대가 남원에 있다.

과거 8명의 훈련소, 후반기 교육을 함께 받은 동기들이 전주의 사단사령부에 왔을 때 가장 군번이 빠른(보통 나이가 많은) 동기가 이곳으로 왔고 그 다음이 나였는데 전북에서 가장 병력 밀집이 많은 해안선으로 내가 떨어졌고 나머지는 전주의 사령부에 남았었다.

당시 나이가 가장 많긴 했지만 티내지 않았던 거창 출신 정이병은 물리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 같은 사단에 있어도 근무하는 곳이 정반대라 얼굴을 못봤고 나머지 동기를 보면서 안부를 확인했지만 그들도 만난적이 없다보니 알 수가 없었다.

인상이 험하다고 병과주특기 교육을 받을 때 식기검사를 하라고 선배들이 임명을 했는데 그 일을 착착해냈던 인물로 억쎈 해병위탁생들도 세척한 식기를 아무 말없이 잘 제출했었다.

그러나 인상이 강할 뿐 착한 사람이라 자대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따랐는지 여러 단위부대가 통합된 곳에서 일찍 내무반장이 될 만큼( 과거엔 지휘관이 임명하긴 하지만 병력들의 암묵적 지지가 있어야 했다.) 리더쉽 또한 좋았던 사람이다.

그도 동기들을 궁금해 했지만 군대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병장을 달고 16개월 만에 포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중 만나 반가움을 표했었다.

나만 빼고 집이 전부 부산과 경남이던 동기들을 말년이 되어 자주 봤는데 다른 동기들이 두명 네명 같은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보는 편이었지만 남원에 있던 정병장과 나는 극과 극에 위치하여 만날 수 없었다.

" 처음에 전라도로 자대 배치 받아서 시껍했다! 아이가? 근데 집도 가깝고 사람들과 친해지니 또 다른 게 있지 않았겠나?"

남원에서 버스를 타면 함양과 거창이 잠깐이고 진주나 대구 부산도 바로 가니 좋았던 것 같고 전국8도의 사람이 다모인 곳이 군대다 보니 지역에서만 살던 청년들에겐 또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제대를 하고 근처를 지나면 광한루를 들렸고 연못에 비단잉어가 신기해서 더 바라보고 테마공원처럼 만들어진 길을 따라 오래된 나무와 남원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춘향전을 보면 운봉, 순창, 옥과, 장수, 임실, 곡성등이 등이 등장하는 걸 보면 섬진강 수계의 중심고을로 읍성이 있고 어사출도 전에 나졸들을 단속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과거 남원의 위상을 알 수 있고 이야기의 중심에 광한루가 있음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갖 물산을 거두어 착복하고 화려한 잔치를 하다 서울에서 내려온 암행어사(실제 이루워 질 수 없는 일)에게 적발되어 지금으로 말하면 보직해임 당하고 옥에 갇힌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과정에 춘향이를 불러 '자신의 수청'을 요구하니 춘향이 왈 '오는 사또 마다 명관이로구나! ' 라고 비꼬는 대사를 보면서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가 무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릴적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70년대 후반 광한루를 운봉 사는 지인과 함께 다녀온 후 '수많은 잉어'를 이야기 할 때 놀랐는데 말로 듣던 물반 고기반을 목격하기 위에 서른즈음에 온적이 있었다.

추워서 없는 건지 아니면 개체수를 줄인 건지 모르지만 연못에 잉어는 많지 않았으나 컷다.

겨울이지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들린 광한루의 느낌을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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