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전자제품은 220V로 변화하고 있었고 시골은 220V로 전환이 되어 있었다. TV는 110V밖에 쓰지 못하는데다가 서울의 남산이 멀어 전파도 잘 잡히지 않아 동네는 큰 규모의 공동안테나를 사용했으며 비용을 내야 했다.
컬러TV가 들어 온다고 했지만 당시 시골엔 흑백TV 조차 없는 집이 많았다.
TV는 여전히 비쌌고 월부로 들여놨으며 들여 놓으면 이웃에서 찾아와 보기도 했다.
다양한 전자제품이 국산화되어 보급이 되는데 금성이나 삼성에서 나오는 것들이 팔렸고 대한전선 같은 곳에서 만들어 팔았고 부산을 통해 흘러온 일제물건이나 베트남전 이후 들어온 카셑트 라디오 같은 것도 있었지만 어떤 지역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다.
동네전파사는 호황이었고 출장도 많았다.
당시 오래된 한옥으로 마당이 넓은 집에 세를 들어갔고 오랜시간 TV는 아예 볼 수 없었다. 늘 보던 것이 없으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한다고 책을 보던 것도 아니고 함부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다 동네 개울가에서 고기를 잘 잡던 한 친구와 사귀는데 그 녀석은 자기집에 TV가 얼마전에 들어왔다며 놀러 가자고 했고 그 집 안방에서 자주 시청을 했다. 밥먹는 시간 이외엔 놀이터였고 주변에 어린 꼬마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다.
광에서 칼이나 썰매를 만들기도 하고 우물이 있어 시원한 물을 길러 마시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의 집에도 변압기가 설치되고 공동안테나도 가입하여 TV를 다시 볼 수 있었지만 그전 처럼 자주 보지 않았고 친구집에 가서 놀았다.
그러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시내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110V용 전자제품은 사용을 줄이게 되었고 변압기는 보기 어려웠다.
영어 transformer에서 나온 일본식 발음 '도란스'라고 해서 설치가 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코드를 꽂아 문제가 있던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전환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일부제품은 아직도 변압기에 의존해야 쓸 수 있는 것이 있다.
TV를 잠시 볼 수 없던 시절 집에 늘 데리고 가서 함께 놀고 맛있는 것도 주고 전학을 간 후에도 찾아가 보고 성인이 된 후 그리고 그 친구가 결혼을 한 이후 부인과 아이의 얼굴을 보고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찾아 가보니 새로운 건물이 들어오고 지인들에게 물어도 근황을 몰라 그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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