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과거에 군에 오지 않아도 ...

lkjfdc 2020. 12. 26. 18:19

 

 

 

 

 

80년대 중후반엔 병력자원이 남았습니다.

현역병 입대 비율이 대략 50% 나머지는 보충역과 민방위라고 말하는 제2국민역으로 소집되었고 소수가 장교나 부사관으로 지원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도시는 공군기지가 들어 온다고 했고 인근엔 연대본부가 그리고 시,군 마다 1개씩 있는 관리대대( 예비군이 대부분이지만 1개 중대의 기동중대가 현역간부와 현역병 일부 방위병으로 편제)가 2개나 있었고 인근면에는 대대급의 탄약창까지... 그리고 시골지서까지

해안선이나 병참선이 있는 곳도 아니지만 방위소집이 많았습니다.

현역입영대상자도 방위로 소집이 되는 경우가 있어 지역사회 청년들에겐 악영향이 있었습니다.

아니 '현역이 힘들지? 방위가 군인이야?' 하겠지만 기간병 숫자가 적고 예비군 중대 소속의 병력들이 경찰의 업무까지 떠안고 사건 사고 현장까지 출동하며 학교선배가 밑으로 들어오거나 객지에서 이사온 건달출신이 소집이 되면 위아래가 바뀌고 없는 집에선 중고등학교 부터 대학 뒷바라지까지 했는데 새벽부터 밥해주고 용돈주고 이건 큰 부담에 부대의 현역병과의 갈등까지 생기면 군대생활 자체가 꼬이는 것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동기들 보다 1~2년 입대가 늦고 지역사회에 아는 선배도 잘 없던 저는 방위병으로 소집을 할 경우 발생할 부담과 군 출신이신 아버지가 이 광경을 목도하셨을 경우 발생할 충격과 불화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경제적 부담도 컸습니다.

학비 부담 때문에 막내동생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공고에 기숙사가 있어 아랫녁 구미로 갔는데 저까지 부담을 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 여동생이 진학을 하면 누군가 부담을 줄여야 했습니다.

신체검사를 지역에서 받아도 되었지만 방위병 소잡이 될까? 멀리 본적지 청년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부산으로 가서 신검을 받아 현역병으로 입대를 합니다.

그러나 방위병제도의 부작용을 봤던 제가 근무한 부대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바깥에서 사고가 나면 부대가 시끄러웠고 영내 근무자인 현역병들에게 불똥이 튀었고 누군가 열외로 빠지면 현역병들이 부족한 근무를 채워야 했고 출퇴근 하는 병력들끼리 군기를 잡고 구타사고가 났는데 예비군 중대장이던 방위병의 아버지가 오셔서 부대를 뒤집어 놓고 가고 당시 최고 선임이었던 제게 책임을 묻기도 했었습니다.

문제는 군대에 안 와도 되는데 사회적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을까? 어쩔 수 없이 온 불우한 병력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휘관이나 지휘자에겐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같고 있어도 이들을 중간에 제대 시키는 것도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도 제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불편했던 사람은 주간에 취사병으로 근무를 하게 했고 시내에 방한칸 마련할 돈이 없어 어머니는 서울에서 가사도우미하던 사람은 스큐류공장에 다니며 야간에 격일로 경계병으로 출근하고 몇몇은 식당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현역병들 또한 집에 아버지가 안계신 경우가 몇 있고 중산층 이상은 거의 없었으며 제대하면 학교로 돌아갈 병력은 많지 않았고 선임이나 후임이나 영세민들 뿐이었는데 좀 형편이 되고 힘이 있는 집안의 신병은 상급부대에서 내릴 때 걸러지고 그나마 내려왔다가 다시 빼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휴가를 갈 때 인사계가 따로 불러 집에 뭐라도 사가라며 돈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복귀할 때 비싼 치킨이나 먹을 것 사오지 못하게 하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물론 형편이 되거나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에겐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빠져야 할 사람들은 입대를 하고 몸에 큰 문제도 없고 독자도 아니고 집도 부자인데 군입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불이익이나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잘 했으며 또 누군가는 시민단체에서 또 누구는 정당에서 또 누구는 시위하다 구속되어 형을 살고 군입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뭐 법이 그래서 면제되었다고 하나 군복무를 행하는 사람들이 보면 영화의 대사처럼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문제는 군입대를 가볍게 보고 또 어떤 이는 독재정권을 뒷바침하는 집단이니, 미군의 용병이니 하면서 죄인을 다루듯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안갈 수 있으면 안가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는데 부모가 고위공직자나 큰 부자도 아니고 ...

당시 몸이 불편해도 집이 어려워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리기 싫어 불편함에도 임무를 행했던 이들도 있었고 얼마전 유승준 같이 사회의 혜택은 다보고 빠져 나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여당 국회의원과 자식들 중에도 군대 안 갈 만큼만 아프고 ( 아닌 사람에겐 죄송) 빠진 경우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을 했다고 짧은 군입대 마저 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과 유명세만 얻었다면 미안해 하고 공직자로 나서는 걸 사양해야 하며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강연료나 인세 또는 다른 사적인 일을 해도 좋을 겁니다.)

국민에게 유명세를 얻는 것 보다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했을 때 자신의 입지는 강화되고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기자들은 특정인들 사생활 현미경처럼 취재 하지 말고 유명한 사람들의 빛나는 부분만 보여주지 말고 병역실태와 부동산 투기 그리고 해외출산등을 미리 미리 알려서 청문회에서 시간낭비 하게 하고 선량한 국민들이 크게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사장 근무의 기억  (0) 2021.01.15
2021년 육군달력  (0) 2021.01.03
영문판 육군사진집 1966년  (0) 2020.12.19
12사단이 된 17연대  (0) 2020.12.06
오성장군 '김홍일' 드라마와 작가 박경석 장군  (0) 202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