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풍수지리와 자연재해

lkjfdc 2020. 8. 12. 09:17

조상들이 집터를 잡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장풍득수 바로 바람을 막고 물을 구한다는 풍수에 적합한 곳이 었다.

잘 생각해 보면 고을 주자가 들어가는 곳이나 목이나 부 그리고 현이 들어가는 곳을 보면 홍수피해가 적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많은 도시들이 바다가 그리고 강가 같은 수운이 잘되어 있는 곳에 자리 잡으면서 작은 홍수나 태풍은 피해가겠지만 큰 홍수나 태풍 해일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 서울을 보더라도 4대문 안의 경복궁 뒤는 배산임수 지형이라 홍수피해가 적으며 있었다면 인간의 간섭 때문이다.

부산 또한 지금은 커다란 도시지만 과거엔 금정산을 뒤로한 동래부가 중심이었고 바다가 있는 바닷가나 수영은 한적한 어촌이며 병영이었다.

목포를 관할한 나주 또한 그랬고 인천을 관할한 부평 또한 안쪽으로 들어와 큰 물과 거리가 멀었었다.

물의 도시 춘천도 원래는 강이 그리 넓지 않았으며 봉이산 인근 큰물과 먼 곳에 관청이 있었다.

강릉 또한 동해와 아주 가까운 고을이지만 바다와는 거리를 두었었다.

내륙의 도시였던 충주나 청주 원주 또한 큰 강과는 거리를 두고 관아나 주택가를 설치했었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경제적 이익이 있었기에 물이 들어오고 홍수가 나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간척을 하고 물을 막아 댐을 건설했다.

강이 내려다 보이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멋지고 좋지만 큰 재해시 위험하다.

또한 댐이 수량을 조절해주고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겠지만 하류에 사는 다수의 도시인들을 위해 수문을 막고 개방하지 않으면 상류의 주민들도 위험해 질 수 있다.



강변의 큰 고층아파트나 바닷가 인근의 고층아파트는 볼 때 멋있고 우리나라 경제의 상징일 수 있으나 자연재해에 위험할 수 있으니 앞으로 계속 건설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앞으로 나갈 땐 과거 조상들이 살아온 예를 다시 한 번 찾아보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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