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흙'이란 제목의 소설책 2권이 집에 있었다.
표지엔 누런 황토가 사진으로 찍혀있고 작은 글씨로 쓰여진 장편소설이었다.
평안도가 고향인 시골 총각 ' 허 숭'이 서울의 전문학교를 나와 고시에 합격도 하고 권력도 있는 부자집 딸 '정선 '과 결혼을 한다.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기 보다는 힘들고 가난한 고향의 사람을 돕고자 나서고 자신과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자살을 하려고 한 '정선'을 용서한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고시낭인 '갑진'은 정선과 불륜을 저질렀지만 반성하고 검불랑이라는 곳에 가서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고 촌락에서 계몽운동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로 과거에 만들어 지고 유명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으며 이 소설을 쓸 당시 적어도 이광수는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대단한 사람있었고 선각자였으며 유명한 '오산학교'의 교가도 만든 이었고 임시정부산하에서 독립신문을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생시절 이광수의 변절이나 최남선의 변절 윤치호,김활란 심지어는 교과서에 나오는 서정주,최정희, 노천명, 모윤숙 그리고 우리나라 헌법을 만드는데 관여하고 민족고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나 그리고 주요한,홍난파,김은호 김동환등 우리의 감수성에 영향을 준 작가들이 앞장서서 일본이 벌이는 성전에 참여하라고 독려하고 나서라!며 앞장선 사람인 줄 정확히 몰랐었다.
특히 이광수는 창씨개명을 하면서 통상 '김씨'가 '가네'라는 '금'자를 버리지 못하고 소극적 명칭을 쓰는데 반해 '향산'이라는 성을 썼으며 이 이름은 일본왕이 즉위한 곳의 명칭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성명은 중국식이며 이 보다는 일본식인 4자로 하여 일본의 신임을 얻고 일본왕' 덴노'의 신민이 되는 길이며 조선에 좋을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개명을 했다고 전한다.
당대 지식인이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의 적극적인 친일과 전쟁참여 독려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며 '당시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말들이 마음을 더 쓰리게 한다.
과연 지금 과거와 비슷한 일들이 있다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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