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이 별세했다.
우리군의 상징적 인물이며 격동기 파란만장한 생을 산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 태어나 어려운 형편을 극복하고 당시 인재들이 모이던 평양사범을 마치고 교사로 일을 하다 만주에 있던 봉천 군관학교를 나와 만주군장교가 되어 우리나라 사람들로 구성이 된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지역의 항일세력들과 싸웠다.(이 항일세력은 이념적으로 보면 국민당 쪽이 아니며 팔로군들이었다.)그러다 소련군에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나 자신의 뜻과는 다른 세상이 전개되자 남으로 와서 그간의 군경력을 인정 받아 군사영어학교를 나와 국방경비대 장교가 되며 그 후 국방경비대는 대한민국 육군이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념과 사상갈등으로 숙청되지만 백선엽은 그 중심에서 자신의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국군의 핵심이 된다.
당시 우리군은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정일권이 선배 그리고 박정희가 후배지만 나이가 많아 대우를 받음 , 김백일,이한림, 신현준등)그리고 일본육사 출신 , 일본 학병출신들이 군의 기간이 되며 광복군은 상징적인 자리에 몇명 임명된다.
군 후배지만 연장자인 박정희 구명운동에 힘을써 살려내며 광주의 5사단장으로 근무하다가 서울외곽 1사단장으로 임명 되어 당시 시흥의 보병학교에서 보수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초기 개성전방 부터 파주 고양까지 밀려 올때 쯤 병력을 수습한다.
다른 사단장들 보다 늦게 현장에 갔으나 한강을 도하 초기 1사단을 이끌고 낙동강변까지 가서(준장진급)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유엔군의 북진과 함께 평양을 처음 수복하고 압록강으로 가던 중 중공군에 패한 미군을 보고 그 심각성을 깨닫고 대처하지만 당시 밀려오는 군대를 막는데 고전을 한다.
그 후 태백산맥 동쪽을 책임지는 1군단장(소장진급)이 되어 중서부전선과는 달리 밀리지 않았고 전선이 고착되자 휴전회담 한국대표를 하고 지리산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 야전사령부 사령관이 되어 군과 경찰을 이끈다.
그 후 중장으로 진급하고 2군단장이 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던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해임되자 참모총장이 되어 계엄사령관 임무를 하며 이승만의 의도를 받아들이는데 고전을 한다.
당시 국군의 지휘부는 정치권 특히 이승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53년 1월 우리군 최초 대장계급을 달며 휴전 후 원주에 창설된 1군 사령관이 되며 다시 육군참모총장이 되는데 전쟁시기와 휴전직후엔 육군참모총장이 사단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정일권 )
아무튼 60년 전역을 하는데 지금으로 보면 일찍 군복을 벗고 사회에 나왔으며 만약 61년 군에 있었다면 5.16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시 백선엽은 주중대사로 대만에 있었다.
후배들이 만든 군사정부에 의해 프랑스 대사 및 유럽의 대사 그리고 북한과 가까웠던 아프리카 13개국 대사가 되는데 당시 백선엽 뿐 아니라 정일권도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아마도 당시 실권자인 박정희와의 관계도 있고 상호 견제하고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 추측한다.
그후 교통부 장관을 지냈고 퇴임한 후 비료공장 사장도 역임하였다.
능력이 좋아 그때 그때 선택받고 인맥 또한 광범위 하여 커다란 적이 없던 인물이고 시대에 따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선택한 난 사람이었다.
특히 전쟁시기 미국의 정보능력과 작전능력 군수부문에 대한 역량을 보고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노력하여 전쟁시기 부터 육참총장 시기 미국방문시기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그리고 백야전사령관시절 비정규전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그러나 실권자 앞에서 힘있는 후배 군인들 앞에서는 쓴소리 보다는 자신을 챙겼고 그것이 다양한 자리와 명예를 보장해 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식민지에 태어나서 자신이 충성할 대상이 누구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잘 알았던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세상은 잘 사는 길과 바르게 사는 길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말하기 전에 어느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느 것이 바르게 사는 건지? 요즘 더 느끼는 거지만 그 대답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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