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적 동네선배들집엘 가면 앉은뱅이 책상( 서랍이 두개 초등학교 때)이나 쑥색 철책상( 이건 중고교에 입학 했을 때) 이 있고 방바닦엔 학생중앙이나 소년중앙 같은 잡지가 있었고 클로버문고라고 낱권으로 팔던 만화책이 있었다.
그런데 호기심을 자극하던 장비? 가 있었는데 바로 제도기 였다.
5품이니 6품이니 무슨 태권도 급수도 아니고 아무튼 기술책에서 보던 것이 있었는데 문구점에서 그냥 팔던 콤파스도 아니고 콤파스 비슷한 유사장비가 여러개 있었다.
물론 중학교 때 간단한 제도를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실습을 하는 건 잘 없었다.
그래도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는 책꽂이도 학교에서 만들고 버니어캘리퍼스 마이크로미터 같은 걸 직접 사용하여 측정해보고 학생수가 많지 않으니 기술실에서 거의 살다 시피 했었다.
그러나 도시로 ( 인구10만 정도 였지만 읍면과는 많이 달랐다.) 나오니 실험실이나 기술실,도서실 출입은 청소할 때 뿐이었고 이론만 공부를 그것도 요약한 것 외우게 하고 시험 끝나면 틀린것 확인하고 타작? 하는 것이었다.
실제 성적은 면단위 학생들 높았고 지시 하지 않아도 참고서 사서 스스로 공부하는 비율이 높았었다.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시골 중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기전 실험실에 가서 노는 걸 좋아했고 작은 학교지만 동식물 표본도 많았고 책도 제한되어 있었지만 빌려볼 수 있었다. 주로 빌려본 건 학과공부완 관계없는 '가상의 세계' '동물에 관한 것' 을 빌려봤다.
그러나 시골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환경미화 작업이 많았고 농번기 땐 지원을 많이 나가고 학교 실습지( 말은 실습지인데 거의 작업) 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은 건 당연했다.
좋은 게 있었다면 웅변대회, 독후감발표회, 합창대회등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중소도시로 전학을 간 이후에는 체육대회 정도가 있을 뿐 다른 건 없었고 과밀학급에 시골에서 방을 얻어 나와 일찍 유학을 온 경우도 종종 있었다.
도시에 있는 공고나 상고, 농고엔 인근 시골 학생들의 진학이 많았고 반대로 시골의 인문고나 당시 실업계고엔 도시에서 밀려난 학생들과 시골학생들이 소외된 감정을 가지고 일탈을 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도시의 공고 상고 농고도 비슷했었다.
제도기 같은 하이테크? 문구를 보면서 나는 선배들 처럼 되어 T자나 스케일자를 가지고 뭔가 배우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확바뀐 도시의 중학교에서 실업계고등학교를 가고자 하는 학생은 당시에도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갈 때도 적성이나 희망보다 성적에 맞춰 학교에서 지시하는 대로 가긴 했지만 실업계고를 가는 걸 싫어했었다.
그건 학교를 서열화 하고 차별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경우도 있었고 막상 취업 때문에 가긴 했지만 실습이 과도하거나 현장에 취업을 갔을 때 생각했던 근로현장이 아이었기 때문이었고 도시의 학생들의 경우 이점을 시골학생들 경우보다 빨리 파악하거나 다른 길을 알아봤던 것 같다.
나도 동네 선배들의 경험이 제대로 전달 되었다면 여러가지 방향을 생각해 보고 진로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교과서와 실습장비를 보고 쉽지 않음을 알았고 현장의 현실을 입소문으로 듣고 나같이 불성실하고 눈치없는 사람이 가기엔 쉽지 않은 길임을 느꼈다.
장학금도 준다고 했고 취업도 된다고 했으나 그길이 만만한 게 아닌 걸 알면서 멋지게 보이던 제도기나 T자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모형을 만들거나 뭔가 그릴 땐 제도기를 사용하고 스케일자나 특이한 도구를 사용하고자 한다.
문구점에 가면 안쪽 구석에 있던 비싼? 제도기는 당시 보다 많이 싸진 구식장비가 되었다.
'문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라스틱 모형자 (0) | 2020.09.08 |
---|---|
오래된 주남연필을 받았다. (0) | 2020.09.02 |
지금은 보기 어려운 대나무자 (0) | 2018.05.30 |
육각연필과 사각연필 (0) | 2017.10.10 |
연필깍이에 관하여 (0) | 2017.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