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라는 대사가 있었다. 이말이 뭘 상징하는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여성교육에서 차지하는 이화여대의 비중은 적지 않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스스로 이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실천하고 행동한 여성들도 많고 일제 강점기 어두운 역사의 등불이 된 인사들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발자취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신이 몸담었던 곳을 욕먹게 하고 그것이 사적인 관계를 넘어 공적이고 다수에게 큰 피해를 준다면 그러한 불명예는 없어야 하고 그러한 자들 때문에 어렵게 쌓아온 이미지를 나쁘게 한다면 참으로 개탄스럽고 더더군 다나 그들이 그 조직의 수장이거나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이라면 그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화여대의 명예를 먹칠한 사람들 중 여럿이 있지만 특히 '박마리아'란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19가 일어난 배경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특히 부통령 출마를 한 이기붕 때문이었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당선에는 이상이 없었다.(이해가 안되는 것이 당시에도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하는 이것이 공화국인지 세습군주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고령의 이승만이 유고시 그 대권이 이기붕에게 넘어가고 그것을 위해 자유당 정권은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하게 된다.
당시 넘버 투였던 이기붕은 이승만의 비서로 근무한적도 있었고 여러 요직을 역임했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로만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고 그의 권력욕을 더 부채질 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인 박마리아였고 그녀는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여 국정에 개입하고 권력의 핵심에 접근한다. 당시 유행한 말이 서대문 경무대로 장관들도 그녀의 영향에 따라 자리가 왔다 갔다 했다.
또한 그의 아들 이강석은 이승만의 양자로 들어가며 그에 따른 폐해도 있었다.
또한 군의 실세였던 원용덕(일제 강점기 군의관 출신이며 해방 후 군의 실세로 미군과의 관계가 돈독한 변신의 귀재였으며 박마리아와 코드가 유사한 인사)과의 사적 관계를 이용 군과 이대인맥을 연결지어 개입을 한다.
일제 강점기엔 미국 유학(조지 피바디 사대 출신)이 후 이대 교수를 하면서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 전쟁에 나서길 조직적으로 주장하고 해방 이후 미군정 이후엔 카멜레온 처럼 변신한다.
이승만 정권의 뒤에서 추악한 짓을 저지르면서 이화여대에서는 부총장을 했었고 영문과 교수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철저한 인맥과 권력을 향한 집념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자유당 정권을 부패하게 만든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요즘 다시 이화여대가 시끄럽다. 이화여대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권력관계 그리고 학교를 책임진 자들 그리고 추악한 뒷모습은 선량한 이대인들과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평생교육대학으로 시끄럽더니 지금은 청와대와 연결된 실세가 그의 딸을 대학에 입학시키면서 학교 뿐 아니라 관련된 정가도 시끄럽다.
세월은 변했지만 권력핵심을 맴돌며 국정을 농단하는 자는 어디에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경우 ' 이화'는 또한번 홍역을 치룰 것 같고 역사는 학교를 이용하여 국정을 농단했던 자들을 또 한번 주목하고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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