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자유의 '멀어져간 사람아!'신대철이 부른 곡
한때 우리나라 3대 기타리스트라며 유행했던 말이 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본격적인 헤비메탈을 하겠다고 밴드를 만든이가 기록상으로 분분한데 아마 라디오의 볼륨을 줄이게 한 밴드의 시작은 '시나위'가 맞다고 본다.
이 시나위를 만들고 전면에서 기타를 친 사람은 신대철이고 김도균 김태원에 비해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의 기질은 타고 났다고 보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밴드음악은 수익을 내는 음악이 아니었고 구성원들의 교체와 음악적 견해 등으로 해체되는데 90년대 초 백두산은 있긴 했지만 개점 휴업 리더였던 류현상은 사업가였고 김태원 또한 휴지기에 들어갔었고 시나위 또한 활동을 접었고 당시 에너지를 빼고 블루스적 요소를 넣어 만든 밴드가 바로 '자유'였다.
물론 안치환이 자신의 노래제목의 이름을 딴 자유가 지금도 있지만 당시 기본악기에 유명한 건반주자 최태완이 녹음에 참여한 '자유'의 음반은 특이했다.
기타만 열심히 칠 것 같은(실은 다른 악기도 잘 다룸)신대철이 노래를 하며 베이스의 김영진도 노래를 한다.
원래는 보컬을 영입하려 했지만 허락되지 않아 자신의 곡을 자신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대철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고 그 대표곡이 바로 '멀어져 간 사람아!'로 대부분 '박상민'이 부른 것으로 아는데 박상민은 자기 나름의 개성을 발휘하며 '청바지 아가씨'도 다시 불러 힛트를 한다.
신대철은 자유를 잠시 결성했지만 다시 시나위의 결성을 했고 게임이라던 밴드를 잠깐하던 김태원도 '부활'을 재건한다.
그리고 백두산은 훗날 다시 류현상이 up in the sky!를 샤우팅한다.
밴드를 조직하여 1/n하는것 보다 가수의 세션을 하는게 더 큰 수익이 나는 현실 속에서 계속 밴드를 하고자 하는 건 마치 연극배우가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 연극에 쏟아 붓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이땅의 연주자와 가수들이 다양하게 주목받는 현실이 이루워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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