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이야기

오산학교와 이중섭

lkjfdc 2017. 4. 15. 19:13

 

 

 

 

 

 

이중섭이라는 화가를 알 것이다.

 

미술책에도 작품이 나오고 왠만한 학생들도 아는 이중섭이 가장 화려하고 행복해야 할 시절 너무나

힘들고 고독했다.

 

더군다나 그는 혼자 병원에서 운명했다.

 

원래 초년에는 평안도 부잣집에서 태어나 유명한 사립학교인 오산학교에 진학하여 스승 임용련을 만나 재능을 발휘한다.

 

난 오산학교 같은 학교가 오늘날 입시위주의 학교가 새롭게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명문이라 본다. 또한 교육철학은 그럴사 하지만 부정부패로 물든 사립학교가 변해야 되는 이유를 이 학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도시에 있지 않았지만 인재들이 모였고 비밀결사 조직 신민회라는 단체와 관련이 있으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인사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한 때는 학력인정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소월 김정식, 시인 백 석, 백병원을 만든 백인제, 오성 장군이라 일컫는 김홍일, 중국군 장교를 지내고 국군의 장교로 전쟁중 전사한 장철부 중령,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 광복군 김영일등이 이 학교 출신이고 교사들 중에도 유명한 함석헌, 조만식, 신채호등이 있었고 독립정신 뿐 아니라 예체능에 관한 교육도 대단했던 학교라 생각한다.

 

 

 

오산을 졸업한 이중섭은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 원산에서 일본유학시절 알던 일본여성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월남 부산 제주도 다시 부산을 전전했고 가족인 일본인 아내(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자식들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중섭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선원증을 마련하여 가족들을 잠깐 만나고 돌아와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기존의 그림과는 달리 그만의 개성이 있었고 작품을 만든 재료와 도료도 기존 그림들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은 불우했고 힘들었고 병마까지 겹쳐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중섭 하면 많은 작품이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흰 소'라고 하며 이 작품 이외에도 소와 관련된 것이 있고 자전적이며 향토적이라고 한다.

 

우리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고 하는 '이 중섭' 그러나 그의 생은 열정에 비해 비극적으로 끝났다는 것이 가슴아프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은 가슴아픈 사연과 고통이 있어야 탄생하는 산물인가? 꼭 그렇게 귀결될 수 밖에 없을까?

 

우표안내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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