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80년대의 젊은 밴드 다섯손가락

lkjfdc 2018. 2. 4. 08:49

 

 

 

 

 

 

 

 

 

 

 

 

 

 

 

 

 

 

 

 

 

 

 

 

80년대의 음악은 다양했고 밴드의 전성시대였다.

 

 

난 당시 시대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밴드음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알게된 다섯손가락...

 

왠만한 가수들은 조용필 아저씨 빼고 봤는데 (물론 그 이후 관람)밴드의 공연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잡지책에 나온 작은 광고를 보고 서울시내 한복판인 파고다극장 연극관을 찾아갔었다.

 

이 연극관은 소극장으로 당시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주공연장으로 지금 시각에서 보면 열악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적당한 크기에 음향을 쓸 수 있고 가수들과 연주자들 특히 밴드공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공연장이 너무 크면 공연장비를 임대하고 대관료 주고나면 남는게 없을 것이고 대부분 수입은 음반판매로 얻어지는데 당시엔 분배구조도 불합리 했었다.

 

87년 봄 이때 다섯손가락 2기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공연을 봤고 이후 이밴드는 해체되었다.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야하고 누구는 취업을 해야 했다.

 

당시 밴드의 가수 임형순은 솔로로 나서 본격적 프로가수로 나가고자 했고 대학원을 다니던 리더 이두헌은 밴드를 계속 유지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섯손가락 출신들 중 1기 맴버들 최태완 하광훈,박강영 등은 프로연주자와 작곡가등이 되어가고 있었다.(당시 대부분 군복무)

 

2기였던 박문일은 임재범과 이지웅 손무현이 주축이 된 외인부대에가서 베이스를 연주했으나 밴드는 해체되었다.

그 후 외인부대 2기는기타리스트 이지웅이 이끈다.

 

그리고 임형순은 솔로로 당시 성공하여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륨같은 대형공연장에 관객을 모았었다.

 

그리고 이두헌은 최준성이라는 실력있던 연주자가 제대하자 팀을 만들어 다섯손가락을 다시 부활시키려 했지만 임형순이 없는 밴드는 쉽지 않았다.

 

난 다시 파고다 극장에 갔었고 소박한 그들의 공연을 봤었다.

 

이두헌씨와 이야기도 나눴고 그 때 사진도 찍어 편지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군대를 가기전 임형순씨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을 찾았었다.

 

당시 어느 정도 뜬 가수였지만 소박했었다.

 

바쁜 시간을 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뒷 이야기와 하께 노래에 담긴 사연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평균률로 그리고 훗날 이범학과 이색지대에서 활동한 최준성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후 작곡가로 변신했다.

 

이들이 활동할 때 특히 다섯손가락의 노래를 어설픈 사랑노래로 알고 있지만 그 뒤의 사연은 그렇지 않았다.

 

노랫말이 비판적이라며 가사를 바꾸고 강하게 시대를 꼬집지 못했지만 그들나름의 느낌을 주로 소극장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물론 프로로 나서서 활동해야 경제적인 것이 해결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새벽기차라는 노래와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풍선 정도로만 알려진 밴드 다섯손가락 ...

 

새벽기차라는 노래는 분위기가 약간 어두운데 이 노래의 가사는 이두헌이 젊은날 세상을 등진 지인의 사연을 보고 만든 노래이며 풍선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김동화씨의 만화에서 힌트를 얻었고 2집의 타이틀곡인 사랑할 순 없는지는 당시 초라한 대학생인 이두헌이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에 이은 연장선상에서 부른 노래였다고 한다.

 

 

특히 이두헌의 노래말과 연주는 포크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한대수나 블루드래건의 김성호등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3집 이후의 노래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대의 감성이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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